개요

휴대 전화의 한 종류. 스마트 기기란 응용 프로그램을 앱 스토어 등을 통해 설치할 수 있는 기기를 말하는데, 이에 따라 스마트폰의 기준이 결정된다. 컴퓨터에 상응하는 최고급 기능을 제공하는 스마트 기술이 휴대 전화에 이식된 플랫폼. PC와 휴대 전화를 합친 기계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을 손바닥 위에 놓고 쓰는 컴퓨터라는 의미의 팜톱(Palmtop)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간 수 차례 시도돼왔던 스마트 기술의 응용사례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자리잡고 성공한 사례다.

같은 운영 체제 끼리는 응용 소프트웨어가(application software, 흔히 앱(app)이라고 함) 호환이 되는 경우가 많고, 전화 기능 뿐만 아니라 개발자 입장에서는 플랫폼이 규격화되어 있어 앱을 개발할 수 있고, 사용자 입장에서는 앱을 인터넷에서 PC를 거치거나 혹은 ESD(마켓, 앱스토어) 등 여러가지 형태로 스마트폰에서 바로 다운로드를 받아서 이용할 수 있다.

2010년 이후에 출시되는 휴대폰은 전화, 문자메시지, e-mail 이외에 인터넷 접속, 멀티미디어(동영상, 음악) 파일 재생, e북, 카메라, GPS 등의 기능이 보편적으로 제공된다. 다수의 휴대용 디지털 기기가 전부 스마트폰 하나로 대체되는 궁극의 디지털 제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폰 이외의 일반폰은 스마트폰과 구분하기 위해 피처폰이라 부른다. 피처폰도 당연히 자체 OS 및 플랫폼(애니콜랜드나 WIPI가 대표적)을 가지고 있고 애플리케이션을 따로 설치할 수 있는 모델도 있으나 플랫폼끼리의 애플리케이션 호환이 그리 쉽지 않다. 심지어 같은 제조사(또는 같은 제조사의 같은 모델)라고 할지라도 모델이나 통신사가 다르면 애플리케이션 호환성을 보장할 수 없어서 디버깅 후 모델에 따라 일일이 고쳐줘야 한다. 또 고급형인 경우 웹서핑이나 멀티미디어 재생 정도는 가능하나 스마트폰에 비해 저성능이고 여러가지 면에서 스마트폰의 개방적인 연결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2010년대 초 과도기에는 운영체제만 임베디드 시스템을 사용하고, 스펙은 당시 기기들보다 오히려 더 좋은 스마트폰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LG전자의 MAXX. 물론 이들은 굉장히 고가였기에 스마트폰과의 경쟁에서 얼마 가지 않아 패해 시장에서 밀려나게 된다.

 

최초의 스마트폰은 1992년 발표된 IBM의 "사이먼"(Simon)이며, 1993년 애플은 뉴턴 메시지 패드를 출시하였다. 1999년 삼성전자는 애니콜 풀터치 PDA폰(sch-m100, sph-m1000)이라는 웹 브라우징과 이메일 확인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발매하였으며, 인터넷 서핑 기능은 물론, 메일, 어학사전, 성경, 불경, 찬송가, 게임 등의 실용적인 각종 애플리케이션까지 기본 설치의 형태로 제공하였다. 이후에 동년 모토로라도 이메일 확인 기능이 있는 전화기 "아이덴 i1000"을 출시하였다.

실제로 대중에게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수량이 보급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 PDA 제조업체들의 전화모듈 내장을 통한 PDA폰의 유통 이후였다. 사실 초기엔 이 둘은 서로 독립적으로 분류했다. 이 시기 한국에서 유통/판매되던 PDA폰들은 PDA + 전화모듈 부착의 형태였기 때문에 매우 크고, 수백만원 상당의 고가였다.
셀빅XG는 PDA계에서 나름 입지를 구축하고 있던 한국 기업 제이텔이 하드웨어부터 OS까지 전체 국내 개발한 것으로 관심을 끌었는데, 성능은 강력했고 실용적이었지만 점점 복잡해지는 업계와 핸드폰 산업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폰 모듈이 장벽으로 작용하여 지속되지는 못했다. 게다가 PDA는 얇은데, PDA폰의 두께는 마치 워크맨과도 같아서(...) 불편했고 멀티미디어 기능은 MP3P 기능이 유일했는데 이걸 쓰려면 폰모듈을 떼내야했다.
이후 제이텔은 코오롱그룹에 인수되어 사명을 셀빅으로 고친 다음 마이큐브 V100을 개발, 시판하나 종전기종과 다른 바탕으로 개발되었기에 앱 호환성이 전무하였다. 또한 당시 SK텔레콤의 서비스와 겹치는 기능을 죄다 거세당해버렸다. 당시 수입되던 PPC 계통보다 기능이 부족하여 그대로 사장되었고 셀빅도 법인등기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추락한다.

사실 삼성전자는 넥시오라는 PDA폰 라인업을 더 가지고 있었다. B2B목적으로 출시한 상품이었는데 SKT용으로 1개기종(S151) KT용으로 2개기종(S150/S155)을 출시하였으며 마지막 기종인 XP40은 와이파이 전용으로 출시되었다. 이들은 특이하게 Windows CE계열로 출시되었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히 거대한 5인치라는 규격을 자랑해서 다 기능 휴대번화보다는 현재의 윈도우 태블릿과 같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고 사용자들이 전화기능을 쓰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 기종들은 특이하게 USB A타입 포트를 장착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착안해서 폰 모듈은 떼어내버리고 USB 허브를 안에 빌트인해서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서자취급도 제대로여서 UMPC 출시 직전에는 모든 공식 AS가 중단되며 그대로 소멸되었다.[2]

2002년 정통부에서 "통신사 보조금 지급 금지" 를 한후 잠시 PDA폰 인기가 사그라들었으나 2003년 PDA폰/스마트폰에 보조금 지급을 허가하여 얼리아답터나 업무용, 산업용 위주로 판매가 지속되었다. 당시 Windows Mobile의 전성기였고, 그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어갔다.

•2003~2005년 윈도우 모바일 스마트폰들이 본격적으로 출시되었다. 하나같이 덩치가 컸다. 사이버뱅크 POZ(포즈), 삼성 M400/4000, HP RW6100, 삼성 M420/4300 등이 있었다.

•2006년 드디어 슬림하지 않지만 그나마 휴대폰같은 작은 PDA폰이 나왔다. 삼성 M450/M4500(2G폰)

•배터리가 방전되면 폰이 초기화가 되었다. 저장소가 RAM이었기 때문에 연락처 이메일 메모 그리고 설치한 앱들까지 다 날아갔다.

•윈도우 모바일에서는 터치가 되면 "PDA폰", 터치가 안되면 "스마트폰"(삼성 SCH-M600, WM for Smartphone)이라고 지칭되었었다. 물론 지금은 2007년 해외에서 삼성 블랙잭이 잭팟을 터트리면서 그동안의 기술시험기/ 구색맞추기/ 알 사람만 사는 식이 아닌 본격적인 스마트폰 마케팅이 시작되었다. 그렇다 해도 2009년 까지는 여전히 햅틱 아몰레드 같은 피처폰이 주력이었지만.

•2007년 네임드 PDA폰/스마트폰이 출시되었다.


•2008년 삼성 옴니아의 출시로 본격적인 스마트폰 대중화 시대가 서막을 올랐고, 9시 뉴스 시보에 삼성 옴니아(2008), 옴니아 II(2009)가 뜨기 시작했다.

 

스티브잡스의 스마트폰

 

그러다가 2007년 애플이 스마트폰의 정의를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아이폰이 없었다고 해서 스마트폰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지만, 아이폰은 최초로 다양한 멀티터치 제스쳐를 지원하는 OS를 탑재하고 GPS와 앱스토어 IOS를 출시하여 현대적인 스마트폰의 개념을 정립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스마트폰은 PDA폰이라는 이름처럼 일종의 사무용 기기라는 컨셉이 강했다. 따라서 사용 계층도 주로 비즈니스맨들이였다. 대표적으로 블랙베리. 스마트폰이라곤 하지만 현재처럼 다용도 만능 기기라는 카테고리와는 맞지 않게 사용 용도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아이폰 역시 1세대가 막 출시됐을 때는 인터넷, 메일, 달력, 문자 등 기본 앱만 구동할 수 있는 비싸기만 한 사무용 기기에 가까웠으나 후에 OS 업데이트와 함께 앱스토어가 추가되면서 사용용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iOS가 고전적으로 수 년간 쓰여온 Windows Mobile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리케이션을 능동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과, 당시에 WM과 비교될 만한 높은 최적화 수준을 보여주었다는 점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스마트폰이 기존 피쳐폰의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물리적 버튼을 없애고 정전식 멀티터치 디스플레이를 장착함으로써 소프트웨어의 UI에 엄청난 유동성을 부여했다. 결정적으로 두번째 이유는 높은 수준의 OS이다. 당시 iPhone OS(현 iOS)는 깔끔한 UI와 발전한 기능을 선보임으로써 비슷한 Windows Mobile 등의 기존 모바일 OS보다 진일보했다는 평을 받았다. 세번째 이유로, 어플리케이션 스토어를 위시한 모바일 개발자 지원과 새로운 하드웨어적 기준 마련에 있다. 스마트폰은 멀티터치 제스처와 물리적 버튼의 부재, 다양한 센서, 고성능의 모바일 CPU와 GPU를 장착함으로써, 그에 걸맞는 수많은 종류의 애플리케이션 제작을 가능케 했다. 결과적으로 앱스토어에 우후죽순 올라오는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스마트폰에 바로 설치될 수 있었고, 이는 스마트폰이 단순한 전화기를 넘어선 "만능 기기"로 재분류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었다고 할 수 있다.

 

애플VS구글


2009~2011년의 짧은 격동기 후, 스마트폰은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의 양강체제 속에서 국내의 LG전자, 팬택을 비롯한 제3, 제4, 제5의 안드로이드폰 제조사들이 그 뒤를 잇는 구성으로 마켓이 형성되게 된다. 안드로이드, 혹은 iOS 외의 OS를 가진 스마트폰은 시장 점유율이 상당히 저조해졌으며, 심지어 한때 세계 최고 점유율을 자랑했던 심비안 단말기는 전량 단종을 맞이하고 노키아는 인수당하고 말았다. 국내에서는 우스개소리로 카카오톡이 안되는 폰은 스마트폰이 아닌 것 취급 당하고 있다. 자세한 설명은 하단에 기술되어 있다.

2015년 8월 기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OS로 살펴볼 때 안드로이드와 iOS의 양강 구조이다. statcounter 기준 안드로이드 65.56%, iOS 19.03% 이다. netmarketshare 에서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까지 합산해서 안드로이드 51.65%, iOS 41.18% 이고 3세계 시장의 약진으로 안드로이드의 비중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 기업에서 사용되는 모바일 OS의 경우 iOS가 비교적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iPad의 경우엔 기업에서의 선호도가 상당히 높다. 이와 경쟁할 태블릿 컴퓨터는 삼성전자의 제품들이나 구글의 넥서스 태블릿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2014년 2분기에는 안드로이드의 시장 점유율이 높이 올랐지만 iOS가 여전히 60% 가까이 차지했다.출처 현재는 점유율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기는 하다.

전체적으로 안드로이드의 시장 점유율이 전체 대비 과반을 차지하여 iOS에게 확실한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여 애플이 죽을 쑤고 안드로이드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시장인데 15년 8월 기준 한국의 안드로이드의 시장 점유율은 78%가 넘고, iOS의 시장 점유율은 고작 20%를 겨우 넘기고 있다. 안드로이드 78.31%, iOS 21.50%. 출처 이것도 iPhone 6의 출시의 여파로 11%대에서 21%대로 크게 오른것이다.

Windows Mobile를 사용하는 옴니아 시리즈를 말아먹은 삼성은 갤럭시 A(2010)와 갤럭시 S(2010)와 갤럭시 S II(2011)와 그 파생상품들을 물량공세로 쏟아냈다. 삼성전자-애플 간 고소전으로 국내외의 일부 유저들로부터 카피캣이란 오명도 듣긴 했지만, 이에서는 대부분 승리하고[4] 오히려 고소전으로 이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기도 했으며, 아이폰이 가지 않은 길(대화면, 스타일러스)을 걸어 갤럭시 노트 시리즈의 대성공을 이끌어내어 전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1등을 달성한다. 그 세력은 2016년 2분기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물론 이는 애플 vs 삼성의 양강체제이기도 하지만, iOS vs 안드로이드의 양강체제이기도 하다.

그 와중에 블랙베리는 점차 밀려나고 있으며, 전 세계를 호령하다시피 하였던 피처폰의 제왕 노키아는 MS에게 인수당했다. 그렇다고 MS의 Windows Phone이 잘나가는 것도 아니다. MS는 휴대기기용으로 소위 메트로 UI를 도입했다가 오히려 Windows 8을 말아먹을 뻔 했고, 이후 그냥 인텔 x86 프로세서용 OS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현재는 사실상 지원과 개발을 포기하고 명맥만 이어가는 상태다. OS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아 WebOS로 전세역전을 도모했던 Palm은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삼성이 참여한 바다(운영체제)와 타이젠도 삼성 Z1 등의 저가 단말기로 인도 등의 미개척 시장에서 점유율을 상당히 높이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하였지만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안드로이드에 올인한 모토로라는 꽤 버텼지만, 결국 레노버에 휴대전화 사업이 매각되었다. 그래도 스마트폰 점유율 3위 이하 상위권 제조사들은 대부분 안드로이드 OS를 채용한 제조사들이다. 국내에서도 일찌감치 안드로이드에 올인한 팬택이 한 때 LG 전자를 앞지르기도 했다. 다만 팬택은 해외 진출에 실패하고 넓은 시장을 확보하지 못해 외부 요건에 회사가 굉장히 어려워졌다가 다시 살아났다.

저가 공세를 앞세운 중국/대만쪽 휴대폰 제조사들의 추격이 거세다. 한때 HTC 휴대폰들이 두드러졌다가, 화웨이, 샤오미의 제품들이 좋은 가성비로 주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오늘은 만우절이다.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우리는 평소처럼 내 집에 모여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오늘은 만우절이라서 우리는 한 가지 게임을 하기로 했다.

거짓말을 말하는 게임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안주 삼아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킨다.

톱타자로 내가 말문을 열었다.

여름에 헌팅 했던 여자가 임신하는 바람에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100% 거짓말이다. 하지만 전혀 얼토당토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는 금방 탄로 난다.

하지만 본인이 아니면 모르니까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빌려서 진실을 거짓말인 양 말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순서대로 이야기했고 마지막 친구 차례가 왔다.

그 녀석은 맥주 거품을 할짝거리며 말했다.

[난 너희처럼 거짓말은 잘 못하니까, 하나 지어낸 이야기를 할게.]

[뭐야.. 아예 대놓고 거짓말을 하시겠다?]

[뭐 좋으니까 얘기해. 대신 지루하기만 해봐!]

친구는 바르게 고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친구의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에 있었다.

왜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깨고 보니 나는 거기에 있었다.

잠시 멍하니 상황 파악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장 근처에서 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나아갈 길은 삶의 길이며 인간의 업을 걷는 길. 선택과 고통과 결단만을 제공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 하지만 결코 모순됨이 없게 하도록.]

그리고 소리를 듣고 처음 알았는데 내 뒤에 문이 있었다.

문 옆에는 빨간색으로 전진이라고 쓰여 있었다.

[세 가지 선택이 주어집니다. 첫 번째, 오른쪽에 있는 TV를 끄는 것.

두 번째, 왼쪽 침낭에 들어 있는 사람을 죽일 것.

세 번째, 당신이 죽을 것. 첫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당신과 왼쪽에 있는 사람은 풀려나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두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대신 왼쪽에 있는 사람의 길은 끝입니다.

세 번째를 선택하면 왼쪽에 있는 사람은 풀려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길은 끝입니다.]

[병신 같네..] 어떤 걸 선택해도 비극적이다. 나는 무서워서 심쿵심쿵.

어디에 사는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생명이냐 아니면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의 생명이냐.

그렇다고 세 번째 선택을 하긴 싫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죽긴 싫다. 한 명의 생명과 수많은 사람의 생명.

비교할 필요도 없다. ​침낭 옆에는 쇠 파이프가 있었다.

나는 조용히 쇠 파이프를 손에 쥐고 천천히 침낭 쪽으로 걸어갔다.

애벌러와도 같은 침낭을 쇠 파이프로 내리쳤다.

풕!!! 둔탁한 소리와 감각이 전해진다.

하지만 문이 열릴 기색은 없다. 다시 내리쳤다.

풕!!!!!! 얼굴이 보이지 않고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죄책감은 이미 사라진 상태.

다시 한 번 쇠파이프를 높게 들어 내리친다.

내리칠 때마다 고통스러운 듯 꿈틀거리는 침낭 속의 주인공.

마치 깨어나기 전의 나방 고치처럼 꿈틀거리는 모습.

그리고 어느 순간 문이 열렸다.

오른쪽 TV 화면에는 검은 눈을 한 귀신이 새침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다음 방으로 들어가니까 오른쪽에는 여객선 모형, 왼쪽에는 침낭이 있었다. 바닥에는 종이가 떨어져 있었다.

 

[세 가지 선택이 주어집니다. 첫 번째, 오른쪽에 있는 여객선 모형을 두 동강 내는 것.

두 번째, 왼쪽에 있는 침낭에 불을 붙일 것. 세 번째, 당신이 죽을 것.

첫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당신과 왼쪽의 사람은 풀려나지만, 여객선의 승객은 죽습니다.

두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대신 왼쪽에 있는 사람의 길은 끝입니다.

세 번째를 선택하면 왼쪽에 있는 사람은 풀려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길은 끝입니다.]

여객선은 단순한 모형이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이것을 부순다고 사람이 죽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때 그 종이에 쓰여 있는 건 절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이유 따윈 없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침낭 옆에 있던 작은 드럼통을 전부 비운 후, 준비되어 있던 성냥을 그어서 침낭에 던졌다.

침낭은 금세 불길에 휩싸였다.

나는 여객선 모형 앞에 서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2분 정도 지났을까, 시간 감각 따윈 없었지만, 보통 사람이 죽을 정도의 시간이니까.

아마 2분 정도 걸릴 것이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다음 방에 들어가니까 이번에는 오른쪽에 지구본이 있고 왼쪽에는 또 침낭이 있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종이를 집어 들었다.

[세 가지 선택이 주어집니다. 첫 번째, 오른쪽에 있는 지구본을 부술 것.

두 번째, 왼쪽에 있는 침낭을 총으로 쏠 것. 세 번째, 당신이 죽을 것.

첫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당신과 왼쪽에 있는 사람은 풀려나지만, 세계 어딘가에 핵이 떨어집니다.

두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대신 왼쪽에 있는 사람의 길은 끝입니다.

세 번째를 선택하면 왼쪽에 있는 사람을 풀려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길은 끝입니다.]

사고와 감정은 이미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나는 기계적으로 침낭 옆에 있던 권총을 주워서 침낭을 향해 쐈다.

빵.... 빵... 빵.. 빵. 총알이 발사될 때의 느낌이 짜릿했다.

생각보다 손쉬운 조작법이라 놀라웠다. 문은 이미 열려있었다.

침낭 속의 사람이 죽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마지막 방은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출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겨우 풀려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천장에서 또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질문. 세 명의 인간과 이를 제외한 전 세계의 인간. 그리고 당신. 죽여야만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금 왔던 길을 가리켰다. 그러자 또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모순된 점 없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어느 누군가의 행복 뒤에는 어느 누군가의 불행이.. 그리고 누군가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생명은 지구 상의 모든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생명의 중요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하나하나의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도록... 출구는 열렸습니다. 축하. 축하.]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안도감과 허탈감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온몸에 힘이 빠졌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마지막 문을 열었다.

빛이 쏟아지는 눈부신 방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데 뭔가가 발에 걸렸다.

영정이 세 개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의 영정이었다.

이제 끝.. 친구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우리는 침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녀석의 이야기는 과연 뭘까. 이루 말할 수 없는 박력은 무엇일까.

자리에 있는 모두가 무시무시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맥주를 그대로 들이키며 말했다.

[..... 그런 무서운 이야기는 그만해라. 거짓말 이야기를 하라고!]

그러자 친구는 나를 향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에서 전신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전율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친구가 입을 열었다.

카르마: 업보. 전생에서 저지른 행동으로 인하여 현세에서 받게 되는 응보


저와 아내는 어떤 결혼상담소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용하는 분들의 생각은 다양하겠지만, 저는 단순히 35살이 지난 독신으로 삶에 고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제가 성인이 되자 각자 재혼했습니다.

돌아갈 집도 없어서 어떤 계기로든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등록했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상담소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저는 저 자신에게 전혀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학력도 그렇지만, 당시 가장 자신이 없었던 것이 직장이었어요.
고향에 본사가 있는 어떤 업체의 매장 판매원을 희망해서 지원했지만, 도쿄로 발령받았습니다.

정규직이지만, 특기와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솔직히 언제 그만두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이었습니다.

또 도쿄에서 취직했는데, 이쪽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매우 외로운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휴일에는 경마와 파칭코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저축은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이런 상태로 결혼상담소에 소개되면, 여성분들에게 무시를 받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계시는 많은 여성분의 눈은 매우 정확해서 (스스로 말하는 것도 한심하네요)
저에게 만남을 요청하는 여성분의 데이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요청이 들어와도 실제로 만나기 전에 상담소에서 거절의 통지가 날라왔습니다.
물론 제가 만남을 요청한 여성분들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그 한 사람이 나중의 제 아내입니다. 


아내는 저보다 나은 이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안 계시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결점은 없었습니다.

실제로 만나봐도 아무런 특징이 없는 그런 여자였습니다.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재미는 없지만, 지극히 온후하고 오히려 가정적인 인상의 여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에게 아무런 나쁜 인상은 없었습니다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아내도 아마 절 거절할 것으로 생각해서 적극적인 대화도 하지 않고 그날은 참으로 담담하게 헤어졌어요. 
그런데 며칠 후, 결혼상담소에서 그녀가 다시 만남을 희망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기쁜 마음은 물론 있었지만, 동시에 당황했습니다.

왜 나 같은 사람에게? 저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몇 사람을 저울질 하는 건가? 아니면 사기나 다른 목적으로?
아니, 내가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확실히 사기는 아니겠지.

그런 혼자만의 생각으로 저 자신을 부정했지만, 마음은 이미 끌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몇 차례 만난 후에 그녀는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저는 친구도 없고 이런 것에 흥미도 없네요. 당신만 괜찮다면, 결혼식은 안 올려도 될까요?

아니면 일단 어머니에게 인사라도 드릴래요?"

이런 말을 여자 쪽에서 먼저 말하게 하다니. 한심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비판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만나면서 결혼에 관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가진 것도 아니라서

저는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당황했어요.

그녀는 그런 뉘앙스를 마구 풍기고 있었는데 저는 전혀 몰랐다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솔직히 지금까지의 만남은 극히 표면적인 느낌으로 좋은 분위기가 된 기억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도 마치 무슨 상담을 받는 느낌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래도 애초에 결혼을 생각하고 만남을 가진 저였습니다.

그녀에게 먼저 결혼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을 사과하고

다음 휴일에 당장 그녀의 집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녀의 어머니(현재의 장모)도 아내처럼 매우 온화한 인상을 한 분이었습니다.
저에게 인사를 받은 뒤에 "딸을 부탁합니다"라고 말씀하실 때, 저는 여우에게 홀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혼인 신고를 하고 제가 살던 맨션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라고 해도 원룸식이었고 게다가 전세였습니다.

알게 모르게 단순히 동거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내는 전혀 불만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결혼 생활은 유지 되었고 저는 계속해서 제가 다니던 곳으로 출근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대로 직장에서 인원 감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상사에게 불려가서 해고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 말고도 몇 명 있었습니다.

다음 직장을 구할 때까지 다녀도 좋다는 조건이었지만, 저는 절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평일에 쉬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아내가 출근하면

몰래 구인 잡지를 보거나 직업소개소에 드나들거나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아내가 저녁 식사 후에, 갑자기 말을 꺼냈습니다.
"일하기 힘드시죠. 만약 아이가 태어나면 당신이 평일에 쉬기 때문에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저도 외롭네요.

그래서 사무소의 구인광고를 봤는데, 이런 곳에 근무하면 저도 안심될 거 같아요..."
그리고 아내는 구인 광고를 내밀었습니다. 교과서 관련 편집 사무소였습니다.

내가 구인 잡지를 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한 번 읽어 봤지만, 나이 제한도 빠듯하고 제 분야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컴퓨터는 취미로 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일 뿐이지 실무적인 능력은 없습니다.
그런 곳에 취직이 가능할 리 없다는 게, 그때의 제 기분이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입사가 불가능한 직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어리석은 자존심을 상처 입지 않게 우회적으로 이야기해준 아내의 마음을 이해했고
무엇보다 저 자신이 다급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대로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추천한 그 회사에 이력서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제가 스스로 지원한 회사는 모두 거절당했고

아내가 추천한 회사만이 저를 잡아 준 것입니다. 아내는 아주 기뻐했습니다.

저는 전문 분야가 아닌 업무를 커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직장 동료들도 지금까지 제가 접한 적이 없는 개성적이고 재미있는 사람뿐이었습니다.

업무적인 부분도 자신 있다고 생각하고 지원한 건 아닙니다만,
뜻밖에도 흥미로웠고 충실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이제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에

당시의 상사에게 왜 그때 저를 채용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지원한 사람이 너뿐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지금 만큼은 아니지만, 고용시장에 찬바람이 불었고
저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유능한 인재들도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타이밍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저에게는 (아마 상사에게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지만, 이 일 이외에도 아내의 도움으로 우리 가족이 재난을 극복한 사례는

몇 차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부 이야기하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저도 이런 제가 신기했습니다. 이런 느낌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 (재혼은 했지만, 가끔 얼굴을 뵈러 갑니다.)는 어쩌다 갑자기

"너, 며느리랑 함께 뭐라도 했니? 옛날의 너와는 다르구나."라고 가끔 말했습니다.

우리는 일남 일녀를 낳았습니다.

일 탓도 있겠지만, 원래 게으름뱅이라서 아내와의 즐거운 추억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도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내에게 일체의 불평도 듣지 않았고 육아도 모두 아내에게 맡겼습니다.
아이들은 어긋나는 일 없이 둘 다 남들만큼 자랐습니다.
딸은 올해 사회인이 되었고 아들은 대학에 재학 중입니다.


이런 시기에 아내가 집에서 쓰러졌습니다.
귀가한 아들이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제가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는 엄청난 튜브에 연결되어 얼굴이 빨갛게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결국, 한 번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사후의 여러 잡일은 생략하겠습니다.


아내가 떠난 후, 한 달인가? 두 달 인가...

딸이 아내의 방을 정리하고 있을 때, 쪽지를 하나 찾아냈어요.
딸은 이미 읽은 상태였습니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눈으로 저에게 쪽지를 내밀었습니다.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몇 번이나 할머니에게서 들었어.
나도 엄마의 도움으로 여러 가지 신기한 일이 있었어.
아빠.. 쪽지 읽어 보는 게 좋을 거야.
이 쪽지가 엄마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쪽지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자신의 카르마를 자각했다."

"나는 현세를 방황하며 나의 파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나는 드디어 나의 조각을 발견했다. 아마 그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를 설득했다. 울면서 반대했지만, 아버지도 이해해주셨으리라.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알아주고 있다."

"나의 결핍을 보완하면서 나는 지금의 그를 도와야 한다. 그럼으로써 나에게 나의 조각이 돌아온다."

"이 사람의 인생을 평범하게 보내게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현세는 응보의 세상이다."

평소의 아내와는 거의 동떨어진 느낌의 문장에 한동안 무슨 의미인지 몰랐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떠오르는 것을 쪽지에 적었던 것일까. 그렇게도 생각했습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다시 읽고 나서야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나는 전생에 큰 죄를 지어 현세에서는 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나지 못했다.
현세는 그 응보의 업으로 태어난 것이다. 나는 행복을 추구할 수 없다.

나의 영혼 일부가 더 불완전하게 태어났고 그것을 찾아내어 모든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나의 남편이 되는 것이고, 나는 이승에서 그것을 도와야 한다.

현세에서는 허용되는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포함한 완전한 형태로 태어나고 싶다.

나의 영혼의 일부가 나의 전생의 업보로 인한 죄가 미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죄가 씻겨 나갈지는 미지수다."


제가 이 쪽지에서 받은 인상은 "기막히다." "바보 같다." "불쌍하다." "화가 난다." 이런 감정이 생겨서 아내를

다른 인간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구나." 하고 간단히 동의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없는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그 자체로 저 자신이 아내였던 것 같아요.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저 단순히 연약한 남편의 변명이겠지요.

확실히 그런 면도 있겠죠. 아내와의 첫 만남과 이직하기까지의 일들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어느새 아내가 정해주는 방향으로 향해가던 저의 지난 생애를 생각해보니 쪽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저를 남자로서 사랑한 적은 아마도 한 번도 없었을 겁니다.
저도 여자로서 아내를 열렬히 사랑했는지 물으신다면 말문이 막히는 것이 사실이네요.
하지만 결코 사이가 냉랭한 것은 아니었고 서로가 다투거나 싸웠던 일도 없었습니다.
아내는 저를 끌고 가려고 한 것 아니라 오히려 저를 가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결코,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평범한 인생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현세에서 카르마를 지고 태어난다." 이 말은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업보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왜 이런 생각에 이르렀는지 전혀 모릅니다. 자칫하면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에게 주어진 카르마라는 것임을 말이죠.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삶을 생각하면, 아내의 못다 이룬 업보를 도저히 풀어낼 자신이 없습니다.

현세의 카르마,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채로 다음 생애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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