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만우절이다.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우리는 평소처럼 내 집에 모여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오늘은 만우절이라서 우리는 한 가지 게임을 하기로 했다.

거짓말을 말하는 게임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안주 삼아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킨다.

톱타자로 내가 말문을 열었다.

여름에 헌팅 했던 여자가 임신하는 바람에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100% 거짓말이다. 하지만 전혀 얼토당토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는 금방 탄로 난다.

하지만 본인이 아니면 모르니까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빌려서 진실을 거짓말인 양 말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순서대로 이야기했고 마지막 친구 차례가 왔다.

그 녀석은 맥주 거품을 할짝거리며 말했다.

[난 너희처럼 거짓말은 잘 못하니까, 하나 지어낸 이야기를 할게.]

[뭐야.. 아예 대놓고 거짓말을 하시겠다?]

[뭐 좋으니까 얘기해. 대신 지루하기만 해봐!]

친구는 바르게 고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친구의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에 있었다.

왜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깨고 보니 나는 거기에 있었다.

잠시 멍하니 상황 파악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장 근처에서 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나아갈 길은 삶의 길이며 인간의 업을 걷는 길. 선택과 고통과 결단만을 제공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 하지만 결코 모순됨이 없게 하도록.]

그리고 소리를 듣고 처음 알았는데 내 뒤에 문이 있었다.

문 옆에는 빨간색으로 전진이라고 쓰여 있었다.

[세 가지 선택이 주어집니다. 첫 번째, 오른쪽에 있는 TV를 끄는 것.

두 번째, 왼쪽 침낭에 들어 있는 사람을 죽일 것.

세 번째, 당신이 죽을 것. 첫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당신과 왼쪽에 있는 사람은 풀려나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두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대신 왼쪽에 있는 사람의 길은 끝입니다.

세 번째를 선택하면 왼쪽에 있는 사람은 풀려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길은 끝입니다.]

[병신 같네..] 어떤 걸 선택해도 비극적이다. 나는 무서워서 심쿵심쿵.

어디에 사는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생명이냐 아니면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의 생명이냐.

그렇다고 세 번째 선택을 하긴 싫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죽긴 싫다. 한 명의 생명과 수많은 사람의 생명.

비교할 필요도 없다. ​침낭 옆에는 쇠 파이프가 있었다.

나는 조용히 쇠 파이프를 손에 쥐고 천천히 침낭 쪽으로 걸어갔다.

애벌러와도 같은 침낭을 쇠 파이프로 내리쳤다.

풕!!! 둔탁한 소리와 감각이 전해진다.

하지만 문이 열릴 기색은 없다. 다시 내리쳤다.

풕!!!!!! 얼굴이 보이지 않고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죄책감은 이미 사라진 상태.

다시 한 번 쇠파이프를 높게 들어 내리친다.

내리칠 때마다 고통스러운 듯 꿈틀거리는 침낭 속의 주인공.

마치 깨어나기 전의 나방 고치처럼 꿈틀거리는 모습.

그리고 어느 순간 문이 열렸다.

오른쪽 TV 화면에는 검은 눈을 한 귀신이 새침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다음 방으로 들어가니까 오른쪽에는 여객선 모형, 왼쪽에는 침낭이 있었다. 바닥에는 종이가 떨어져 있었다.

 

[세 가지 선택이 주어집니다. 첫 번째, 오른쪽에 있는 여객선 모형을 두 동강 내는 것.

두 번째, 왼쪽에 있는 침낭에 불을 붙일 것. 세 번째, 당신이 죽을 것.

첫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당신과 왼쪽의 사람은 풀려나지만, 여객선의 승객은 죽습니다.

두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대신 왼쪽에 있는 사람의 길은 끝입니다.

세 번째를 선택하면 왼쪽에 있는 사람은 풀려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길은 끝입니다.]

여객선은 단순한 모형이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이것을 부순다고 사람이 죽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때 그 종이에 쓰여 있는 건 절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이유 따윈 없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침낭 옆에 있던 작은 드럼통을 전부 비운 후, 준비되어 있던 성냥을 그어서 침낭에 던졌다.

침낭은 금세 불길에 휩싸였다.

나는 여객선 모형 앞에 서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2분 정도 지났을까, 시간 감각 따윈 없었지만, 보통 사람이 죽을 정도의 시간이니까.

아마 2분 정도 걸릴 것이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다음 방에 들어가니까 이번에는 오른쪽에 지구본이 있고 왼쪽에는 또 침낭이 있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종이를 집어 들었다.

[세 가지 선택이 주어집니다. 첫 번째, 오른쪽에 있는 지구본을 부술 것.

두 번째, 왼쪽에 있는 침낭을 총으로 쏠 것. 세 번째, 당신이 죽을 것.

첫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당신과 왼쪽에 있는 사람은 풀려나지만, 세계 어딘가에 핵이 떨어집니다.

두 번째를 선택하면 출구에 가까워집니다. 대신 왼쪽에 있는 사람의 길은 끝입니다.

세 번째를 선택하면 왼쪽에 있는 사람을 풀려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길은 끝입니다.]

사고와 감정은 이미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나는 기계적으로 침낭 옆에 있던 권총을 주워서 침낭을 향해 쐈다.

빵.... 빵... 빵.. 빵. 총알이 발사될 때의 느낌이 짜릿했다.

생각보다 손쉬운 조작법이라 놀라웠다. 문은 이미 열려있었다.

침낭 속의 사람이 죽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마지막 방은 아무것도 없는 방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출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겨우 풀려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천장에서 또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질문. 세 명의 인간과 이를 제외한 전 세계의 인간. 그리고 당신. 죽여야만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지금 왔던 길을 가리켰다. 그러자 또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모순된 점 없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어느 누군가의 행복 뒤에는 어느 누군가의 불행이.. 그리고 누군가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생명은 지구 상의 모든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생명의 중요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하나하나의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도록... 출구는 열렸습니다. 축하. 축하.]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안도감과 허탈감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온몸에 힘이 빠졌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마지막 문을 열었다.

빛이 쏟아지는 눈부신 방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데 뭔가가 발에 걸렸다.

영정이 세 개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의 영정이었다.

이제 끝.. 친구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우리는 침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녀석의 이야기는 과연 뭘까. 이루 말할 수 없는 박력은 무엇일까.

자리에 있는 모두가 무시무시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맥주를 그대로 들이키며 말했다.

[..... 그런 무서운 이야기는 그만해라. 거짓말 이야기를 하라고!]

그러자 친구는 나를 향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에서 전신의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전율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친구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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