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이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넓은 의미로는 자연인을 대상으로 하여 사고나 재해를 보상해주는 것이고, 좁은 의미로는 피보험인(자연인)이 사망하였을 때에 소정의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생명보험계약(生命保險契約)은 보험자가 보험계약자 또는 제3자(피보험자)의 생사(生死)에 관하여 일정한 금액(보험료)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보험계약자는 피보험자의 생명에 관한 보험사고가 생길 경우에 약정한 보험금액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인보험계약이다(대한민국 상법 제730조). 즉 생명보험은 사람의 생존과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점에서 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상해보험과 다르고, 생명보험에서는 손해보험과 같이 피보험이익이란 것은 인정되지 아니하고 보험가액(保險價額)이란 개념도 성립하지 아니하며 손해발생유무나 손해의 다과를 묻지 아니하는 정액(定額)보험이다. 보험금액의 지급을 받을 자를 보험수익자라 하고 그 사람의 생사가 보험사고로 되는 그 사람을 피보험자라 한다. 보험계약자와 이들은 동일인일 수도 있고 각각 다른 경우도 있다. 생명보험의 보험사고는 피보험자의 생사, 즉 생존 또는 사망이다.

타인의 생명보험

생명보험계약에서 보험계약의 당사자인 보험계약자 자신을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을 자기의 생명보험이라 하고, 보험계약자가 자기 이외의 제3자를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을 타인의 생명보험이라 한다. 보험계약자가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경우에는 보험계약의 체결시에 피보험자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것은 타인의 사망보험뿐만 아니라 생사혼합보험의 경우를 포함하고, 타인의 생존보험의 경우는 그 동의를 요하지 아니한다. 한국의 판례는,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는 피보험자의 동의를 얻어야 함은 상법 제731조 제1항에 의하여 명백한 바, 이 규정은 강행규정으로 보아야 하므로 피보험자의 동의는 방식이야 어떻든 당해 보험계약의 효력발생요건이 되는 것이다."라고 한다.


손해보험이란?

손해보험 보험사고로 인해 피보험자에게 발생한 재산적 손해를 전보하는 보험의 한 종류이다. 보험자가 보험사고로 인하여 생길 피보험자의 손해를 보상할 것을 약정하고 이에 대하여 보험계약자는 보험료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을 손해보험계약이라 한다. 손해보험은 재산적인 손해를 보상할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피보험자의 생사에 관하여 손해유무를 불문하고 일정한 금액을 지급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생명보험과 다르다. 보험사고는 폭풍우와 같은 자연력에 의하여 발생하는 경우와 방화·절도와 같이 사람의 행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손해는 피보험자가 입는 경제상의 불이익을 말하고 건물의 소실과 같은 직접손해는 물론이고 얻을 수 있었을 이익의 상실과 같은 간접손해도 포함한다. 보험자로부터 전보받는 금액은 보험금액의 한도 내에서 현실로 발생한 손해의 총액이므로 일정한 금액을 전보받는 생명보험과도 다른 점이다. 손해보험에 있어서는 손해를 받을 염려가 있는 이익 즉 피보험이익이 있어야 한다. 손해보험은 보험사고의 종류에 따라 화재보험(683조 이하)·운송보험(688조 이하)·해상보험(693조 이하)·책임보험(719조 이하)으로 분류한다.

피보험이익

손해보험에서 “보험사고가 발생함으로써 피보험자가 손해를 입을 염려가 있는 경제적 이익” 이라고 정의 된다. 즉,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데 대하여 피보험자가 갖는 경제적 이익을 의미한다. 피보험이익의 의미는 화폐단위로 환산하면 보험가액이 된다. 화재보험에 붙여진 건물이 도로부지에 편입되어 수용, 철거된 때에는 피보험 이익이 소멸하므로 화재보험계약도 무효가 된다. 보험계약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표준 : 특정 건물에 대하여 소유권자와 저당권자가 각각 화재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하더라도 양자의 피보험이익이 다른 이상 두 개의 보험계약은 중복보험에 해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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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이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일정한 위험(사고)에서 생기는 경제적 타격이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다수의 경제주체가 협동하여 합리적으로 산정(算定)된 금액을 조달하고 지급하는 경제적 제도를 말한다.

위험이나 사고에 대해서는 보험에 대한 계약 서류에 명시되어 있으며, 보험에 관련된 회사(보험모집인, 단체, 법인)와 계약 대상(계약자, 단체)이 문서에 기재된 내용으로 보험법과 기타 관련 법을 따르게 된다. 계약 조건에 명시된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명시된 조건이 발생하면 "보험상품과 관련된 보험 법인과 국가"로부터 "보상금 수취인과 법정 상속인"에게 해당 조건에 맞는 보상을 지급한다.

근대적인 보험경영은 보험자(회사)가 위험을 분산하기 위하여 다수의 경제주체를 보험에 가입시키고 있다. 이것을 '대수(大數)의 법칙'이라고 한다. 다수의 경제주체는 우발적 사고에 대비하기 위하여 단체를 구성(보험가입)해서 실질적인 참여를 하게 되는데, 이것을 보험단체(保險團體)라고 한다. 이러한 집단구성을 하는 경제주체는 우연한 사고에서 생기는 경제적 요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단체를 형성한다.

보험회사는 다수의 경제적 주체(가입자)간의 중간역할자로서, 우발사고에 대비한 경제적 혜택을 주기 위한 자금축적의 비용을 지출하고, 한편으로는 우발사고가 발생하면 경제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 받는 관계를 말한다. 즉, '한 사람은 많은 사람을 위하고, 많은 사람은 한 사람을 위하는(One for All, All for One)' 것이 보험의 궁극적 목표이다. 보험가입자로부터 받아들이는 보험료 총액과 장래 회사가 가입자에게 지급할 보험금총액이 서로 같도록 되어 있으며 이것을 '수지상등(收支相等)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보험료는 보험회사로서는 항상 장래에 지급해야 할 보험금 중에 미지급(未支給) 된 분의 재산(보험가입자 공동재산), 즉 보험준비금으로서 보험회사가 장래 보험금지급(제환급금 포함)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적립하는 적립금이다.

이러한 재산관리(적립금)는 보험회사가 투자사업을 통해 보험금지급의 준비재산을 형성하는 면에서는 보험업의 금융기능을 볼 수 있다. 금융기능은 대부를 한다든가 어음을 할인한다든가 또는 주식에 투자한다는 것 등은 다른 금융기관과 다를 바 없지만 생명보험의 자금은 보험계약의 장기성, 사고발생률의 안정성이라는 사업의 성격상, 장기성 자금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보험은 경제적 필요를 충족하고자 하는 선후책으로 저축과 같은 확정사고에 대비하는 종류도 구비하고 있는 것이므로, 경제적 불균형을 균형있게 하여 주는 금전조달시설인 것이다. 즉, 금전이 아닌 물질이나 정신적인 위로가 아니고, 반드시 금전적인 조달의 목적을 주로 하는 경제적 시설로서 근대적 보험업은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과 더불어 확립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보험회사의 형태

민영보험

민영보험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기업조직과 주식회사조직, 그리고 비영리목적인 상호회사조직과 협동조합조직 등의 4가지가 있다. 주식회사 체제의 보험주식회사는 상호회사로서, 상법상의 화사에 관한 모든 규정 외에 특별법인 보험업법의 적용도 받는 것이 그 특징이다. 상호회사는 상법 조직에 관한 규정이 없으므로 보험업법에 준거하여 설립되는 형식상 비영리법인이며, 주주가 없고 잉여금은 종국적으로 보험가입자인 사원에게 분배된다. 경영면에 있어서는 상호회사도 주식회사와 비슷하지만 보험경영자와 보험가입자간에 동일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상호회사에는 자본금이 없는 반면, 창업비와 창업후 일정 기간의 사업위험을 담보하는 목적으로 기금을 납입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기금은 사업이 순조롭게 진전하여 잉여금이 생기게 되면 상각하므로 사실상 일시 차입금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서 주식회사의 자본금과 같이 담보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위험의 크기에 따라서 유동성이 높은 손해보험에는 주식회사 형태가, 생명보험에는 안전성이 높은 상호회사 형태가 적합하다.

공영보험

공영보험 조직은 국가나 지방공공단체 또는 기타 공법인에 의하여 경영되는 보험을 말하는데, 법률로써 그 조직을 구성하고 국가 스스로가 보험자가 되어 국가기관(체신부 또는 노동부)을 통하여 직접 보험사업을 경영하는 직접 국가보험과, 국가가 직접 보험사업을 경영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보험의 전반적인 조직과 제도를 법률·명령으로써 규정하고, 그 경영은 특정한 기관에서 경영하는 국영보험의 2가지 형태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공영보험사업의 손익은 경영주체인 국가·지방공공단체 또는 공법인에 귀속되지만, 이 경우 손익의 귀속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있으므로 전자를 완전공영(完全公營), 후자를 준공영(準公營)이라 한다.

보험의 세부사항

보험의 가입절차

생명보험의 경우, 진사(診査)에서 심사통과된 보험계약 신청자로부터의 신청서가 보험료와 함께 제출 납부되면, 소정 양식의 보험계약서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후 이것을 정식으로 보험계약자에게 송부하게 된다. 생명보험계약은 일반적으로 장기계약이므로 보험회사는 이 계약발행대장을 보관하는 것이다.

손해보험은 일반적으로 보험대리인(agents)이나 보험중개인(brokers)이 직접 보험계약서를 발행하게 되는 것인데, 본사에서는 이미 발행한 보험계약서를 검사하는 일만 하게 된다.

보험료의 납입과 수금

보험료의 납입기간은 주로 연납(年納)이나, 생명보험의 경우는 월납(月納), 3월납, 6월납, 연납 등으로도 할 수 있다. 또한 생명보험의 경우는 계약이 주로 장기적인 까닭에 보험료를 계속해서 수금하므로 보험료징수 사무가 계약의 모집과 병행되는 중요성을 갖는다.

보험금 지급

보험금지급은 생명보험에 있어서는 보험사고가 발생하거나 만기가 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있음에 비해서, 손해보험은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점이 다르다. 손실금 지급행위란 보험계약자의 보험사고 발생보고로부터 시작하여 보험계약자가 요구한 손실금의 일부나 전부를 지급하거나 또는 손실금의 지급을 거절하는 최후단계까지의 모든 과정을 말한다. 보험회사가 존재하고 있는 근본적인 목적은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한 것이다. 즉, 보험계약약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이유는 그가 필요로 할 경우 보험의 보호를 받기 위함이므로 보험종목의 여하를 막론하고 신속하고 공정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보험금지급과정은 첫째 보험가입자·보험모집인으로부터의 보험사고발생보고 접수이고, 둘째 사고발생 보고에 대한 사정(査定)과 손해조사이며, 셋째 위의 사고발생에 대한 조사나 진사(診査)를 통한 보험금지급 여부결정과 보험금 지급 액수의 사정이다.

보험준비금

일반적으로 보험료는 보험사고가 발생하기 전 선금으로 받아 들이므로 보험계약에서 규정한 사고가 발생하였을 경우에는 미리 약속한 보험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사전에 약속한 보험금 지급을 위하여 준비금을 적립해 놓지 않으면 안 되며,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각종 준비금 적립을 명령한다. 그러므로 보험회사의 법정준비금은 일반적으로 회사의 자산이 아니고 부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급준비금의 종류에는 보험금 지급준비금·보험금 지급경비 준비금·이익배당금 지급준비금·미경과보험료 준비금·법정계약 준비금 등이 있다.

보험회사의 투자관리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을 통하여 인수한 위험의 발생으로 인한 손실금을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하기 전에 보험료를 보험계약자로부터 받기 때문에 투자할 수 있는 상당한 자금을 보유하게 된다. 그러므로 보험회사는 투자가능한 자금을 실제로 투자하여 투자이윤을 보게 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자에게 적용하는 보험료율(保險料率)을 낮출 수 있는 동시에 회사의 경영이윤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명보험은 장기계약이므로 이자란 요소가 보험료율 결정과 각종 보험계약·현재 가치산정(價値算定)에 있어서 매우 큰 역할을 하는 것임에 비해, 손해보험회사는 그것이 보험료율 산정에 직접적 관련성을 갖지 않는다. 투자별로 보면 생명보험은 취급하는 보험계약이 장기계약이라는 면에서 주로 증권투자 등의 장기투자에 치중하는데 비하여, 손해보험은 단기투자에 치중한다.

대한민국의 보험회사는 1994년 생명보험회사 33개 사, 손해보험회사 17개 사로 나타났다. 최근 경제의 안정, 국민생활의 향상 및 보험에 대한 인식 고조로 그 실적도 상승하고 있는데 1994년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망라한 총보험료 수입은 34조7,871억이었다.

주식회사 자본은 균등한 비례적 단위인 주식으로 분할되므로(대한민국 상법 제329조 2항, 3항) 주식은 자본의 구성부분(독일어: Bruchteil des Grundkapitals)이다. 자본은 금액으로 표시되므로 그 단위인 주식도 금액으로 표시되는데, 이것을 ‘액면주식’(par value shares, 독일어:Nennwertaktien)이라고 하며 대한민국 상법은 이러한 액면주식만을 인정하고 있다.(대한민국 상법 제329조) 이에 반하여 미국, 일본, 캐나다 등에서는 액면가액이 표시되지 않고 자본에 대한 비율만을 표시하는 무액면주식(비례주식)(non par value shares, 독일어: Quotenaktien)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무액면주식을 인정하는 취지는 회사의 자기자본의 조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제도로서, 액면주식의 명목가격(액면가)이 실제 시세를 반영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은 회사의 재정상태를 오인케 할 염려가 있고, 또 액면미달발행이 금지되어 있어 회사의 사업이 부진한 경우에 증자의 방법이 없어 회사 회생의 길이 막힌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한편 무액면주식은 주식사기와 자본충실의 원칙을 위반하는 원인이 되기 쉽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이것을 채용하지 않고, 신주발행의 경우에 한하여 액면미달발행(대한민국 상법 제417조)을 채용하고 있을 뿐이다.

일주(一株)의 금액은 100원 이상으로서 균일하여야 한다.(대한민국 상법 제329조 3항 및 4항) 1998년 개정상법 이전에는 1주의 금액이 5,000원 이상이었으며(대한민국 상법 제329조 4항), 증권거래법상 주권상장법인 또는 협회등록법인의 주식의 경우 상법의 이러한 규정에 불구하고 1주의 금액을 100원 이상으로 할 수 있었다.(증권거래법 제192조의2 1항). 그런데 1998년 개정상법은 이러한 증권거래법상의 규정과 같이 1주의 금액을 100원 이상으로 할 수 있도록 대폭 인하하였는데, 이는 주식분할을 자유롭게 하고 또한 기업자금조달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정부의 상법개정안 제안이유).

자본 또는 일주(一株)의 금액의 외화표시에 관하여는 이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으므로 1주의 금액이 100원 이상에 해당되는 외화로 표시될 수 있다는 논리도 성립될 수 있으나, 환시세의 변동 등에 의한 위험부담의 문제가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식회사의 자본은 주식으로 분할하여야 하고(대한민국 상법 제329조 2항), 원칙적으로 발행주식의 액면총액이 자본액으로 되며(대한민국 상법 제451조), 액면 이상으로 주식을 발행한 때에는 그 초과한 금액은 자본준비금으로 적립되어(상법 제459조 1호) 자본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주식의 액면총액과 자본은 일치하는 셈이 된다. 이와 같이 주식회사 자본은 비율적 단위로 세분화되는데 이것을 주식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주식회사의 자본은 이러한 출자단위의 집적에 의하여 형성된다. 이와 같이 사원의 지위를 일정한 비율적 단위로 세분화하고 있는 이유는 대자본의 형성을 위하여 주식회사에의 대중의 참여를 용이하게 하고 사원의 지위를 주권(株券)으로써 증권화하여 그 유통을 도모함으로써 투하자본의 회사와 다수의 사원(주주)에 대한 법률관계(의결권의 행사, 이익배당, 참여재산의 분배 등)의 집단적 처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원이 한 개의 지분을 갖는(지분단일주의) 합명회사의 사원과는 달리 주식회사의 주주는 비율적 단위로 세분화된 복수의 지분을 갖는다.(지분복수주의)

상법에 다른 규정(대한민국 상법 제343조 1항 단서, 제345호 1항)이 있는 경우에는 주식의 액면총액이 곧 자본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상환주식의 상환(제345조)의 경우, 그만큼 주식의 수가 줄어드는 동시에 주식액면총액도 감소하지만 이 경우는 자본감소의 절차에 따르는 것이 아니므로 소각의 결과 자본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고, 이로 인하여 소각되는 주식수만큼 자본의 계산의 기초가 되는 주식수와 현재의 주식수간에 불일치가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자본액과 주식액면총액이 일치하지 않게 된다. 주식의 이익소각(제343조 1항 단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생긴다. 그러나 신주발생시에 할인발행을 하는 경우(대한민국 상법 제417조)에는 자본이 발행주식의 액면총액(대한민국 상법 제451조)이라는 개념에는 일치하나, 다만 자본과 이에 해당하는 회사의 재산이 불일치하는 점이 있을 뿐이다.

주주권의 내용

소수주주권(少數株主權)은 주식회사에 있어서 주주권의 일종으로 소수 주주에게 인정되는 권리이다. 다수결의 원리가 지배하는 주식회사에서 회사 또는 주주의 이익보호를 위하여 소수주주에게 인정한 특별한 권리를 말한다. 다수결의 남용은 이사의 권한남용으로 이어져 회사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주주총회의 권한축소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주주권의 약화방지를 위하여 주주의 회사에 대한 감독권(이외에 주주총회결의의 취소의 소도 다수결 남용 시정)을 강화한 것이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아서 회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다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다.

소수주주권은 회사가 발행한 주식총수의 일정비율 이상의 주식을 가진 주주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일정한 요건과 구체적 사안에 따라 발행주식총수의 1/100, 3/100, 또는 10/100 이상의 주식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2009년 개정 상법은 상장회사에 대해서는 그 행사요건을 완화하였으며(상법 제542조의6) 정관으로 더욱 완화할 수도 있도록 하였다. (상법 제542조의6 제2항) 발행 주식 총수의 10분의 1 이상을 요건으로 하는 소수주주권으로는 회사의 해산청구권(상법 제520조 제1항)과 회사정리개시신청권(회사정리법 제30조 제2항) 등이 있다. 그리고 20분의 1 이상을 요건으로 하는 것에는 이사의 해임청구권(상법 제358조 제2항), 총회소집청구권(사법 제366조), 회계장부열람권(상법 제466조), 회사의 업무와 재산상태의 검사청구권(상법 제467조 제1항), 청산인의 해임청구권(상법 제539조 제2항), 이사의 위법 행위에 대한 유지청구권(상법 제402조), 대표소송(상법 제324조, 제403조, 제467조의2 제4항) 등이 있다. 1인 또는 수인의 보유주식수를 합산하여 에서 정하는 일정의 주식수가 되어야 그 행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1주의 주주에게도 부여되는 단독주주권과 구별된다.

모회사의 소수주주는 자회사의 회계장부 및 서류가 모회사에 보관되어있고 모회사의 회계감사에 필요하다면 자회사에 대한 회계장부열람이 가능할 수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대전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단순히 세계 대전(World War) 또는 대전(Great war)라고 불렸다. 미국에서는 처음에 유럽 전쟁(European War)라고 불렸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병사 9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기술 및 산업의 고도화와 전술적 교착 상태로 인해 사상자 비율이 악화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전쟁 중 하나이며, 참전국의 수많은 혁명 등을 포함하여 주요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 전쟁은 전 세계의 경제를 두 편으로 나누는 거대한 강대국들의 동맹끼리의 충돌이다. 한쪽 편은 대영제국프랑스러시아 제국의 삼국 협상을 기반으로 한 연합국이며, 다른 한편은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있는 동맹국이다. 이탈리아 왕국은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함께 삼국 동맹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동맹국에 참여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가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침공했다. 이러한 동맹은 재조직되었고 더 많은 국가가 전쟁에 참여하도록 압력을 가하면서 확장되었다.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미국이 연합국에 가입했으며 오스만 제국불가리아 왕국이 동맹국에 가담했다. 궁극적으로 6천만명의 유럽인을 포함한 7천만명의 군인이 전쟁에 가담하면서 역사적으로 가장 큰 전쟁 중 하나에 동원되었다.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제국주의때문이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위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 국민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게 최후 통첩을 내리면서 7월 위기가 시작되었고, 지난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국제적 동맹끼리 서로 연결되었다. 수주 이내에 강대국끼리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이 분쟁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를 침공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러시아가 동원령을 내리면서 독일군은 중립국인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침공하면서 프랑스로 진격했고, 이로 인해 영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했다. 파리 앞에서 독일군의 진격이 멈춘 이후, 서부 전선은 1917년까지 참호전과 같은 소모전 양상으로 굳어지게 된다. 한편, 동부 전선에서는 러시아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로 진격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동프로이센 침공은 독일군의 반격으로 실패하게 된다. 1914년 11월에는 오스만 제국이 참전하면서 전역이 코카서스메소포타미아시나이 반도 등으로 확대되게 된다. 이탈리아와 불가리아는 1915년 참전했고, 루마니아 왕국은 1916년 참전했으며, 미국은 1917년 참전했다.

러시아 정부가 1917년 3월 붕괴된 이후 동부 전선이 해소되었으며 이후 10월 혁명으로 인해 동맹국이 러시아의 영토를 획득했다. 1918년 11월 4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휴전에 합의했다. 1918년 서부 전선에서 독일군의 춘계 공세 이후, 연합군은 일련의 공세를 방어하고 이후 진격하여 독일군의 참호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독일 11월 혁명 이후, 독일이 1918년 11월 11일 휴전에 합의하면서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등 4개 주요 제국이 해체되게 되었다. 앞의 2개 제국은 승계국가가 탄생했지만 많은 영토를 잃었으며, 후자의 2개 제국은 완전히 해체하게 되었다. 유럽 및 서남아시아의 지도는 새로운 독립 국가가 생기면서 새롭게 그려지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 연맹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목표는 유럽의 민족주의의 부활과 독일에서 파시즘의 장악으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며 실패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하게 되었다.


전쟁 이후의 날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는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일본은 오세아니아의 군도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말미암아 반성보다 지독한 가난과 배상금에 대한 것에 시달렸으며 오스만 튀르크도 세브르 조약을 맺음으로써 영토가 크게 줄어들었다(1922년 해체, 1923년 터키 공화국 수립).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도 각각 생제르맹 조약트리아농 조약을 맺음으로써 영토가 크게 줄어들었다. 불가리아는 뇌이 조약으로 도브루자를 루마니아에 떼어주었다.

이탈리아는 승전국이었으나 연합국에게 영토를 보장받기는커녕 냉대를 받았다. 결국 1922년에 베니토 무솔리니에 의한 파시스트 정권이 수립된다.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연합국임에도 불구하고 산둥 반도에 대한 이권을 돌려받지 못하였다.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중앙유럽의 많은 국가는 독립하였으며, 독립을 조건으로 영국을 도왔던 인도는 그 약속이 무산되자 지속적인 투쟁 운동을 시작했다.

한편,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민족 자결주의를 제창하였으며, 전쟁의 방지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국제 연맹을 설립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로써 국제 연맹이 설립되었으나, 정작 미국은 의회의 반대로 가입에 실패하였다. 결국 다시 고립의 길을 걸었다.

1차 세계대전의 영향

  1.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선언하여 국제 정치가 이념화, 도덕화하기 시작했다. 이상적 집단 안전 보장 정책인 국제 연맹을 통해 법률적, 도덕적 세계 여론에 부응하여 평화를 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2. 이 때부터 총력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특히 벨기에 왕국, 러시아 제국과 독일 제국은 식량 부족이 심각했다.
  3. 전쟁 기간동안 맥심 기관총(영국), 독가스(독일), 탱크(영국), 전투기(영국, 프랑스, 독일), 유보트(독일), 곡사포(오스트리아)등의 신무기가 생겨났다.
  4. 독일 국민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일방적 평화의 강요나 다름없는 베르사유 조약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 조약은 아돌프 히틀러 집권과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으며, 바이마르 공화국이 외부로부터 강요된 체제라고 하여 민주 정부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갖지 못하게 하여 공화국의 생명력을 위태롭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5. 이탈리아의 좌절감과 배신감은 파시즘의 발전과 베니토 무솔리니의 집권을 가능케 하였다.
  6.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랐으나, 자신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 연맹 참여를 거부하고 다시 고립주의에 빠짐으로써 강대국으로서 국제 역할에 괴리를 가져왔다. 결국 경제 공황이 생겨난다.
  7. 많은 새로운 국가들이 탄생하여 다른 국가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민족자결주의 민족주의가 상승하여 20세기 정치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인도, 조선등에서 독립 운동 활발}.
  8. 일본은 영·일 동맹을 근거로 연합군 측에 가담하여 1차 대전기간 동안 여러이득을 보았고, 경제 호황기를 누림으로써 대체로 만족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영일 동맹을 이유로 연합국측에 가담하여 참전했다. 그 진의는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의 일본의 지위를 더 높이고 국제적인 발언권 강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1914년 8월 일본은 독일 선전포고한 후, 일본 육군은 중국에 있던 독일의 조차지 산둥 반도 자오저우 만(칭다오 포함)을, 일본 해군은 태평양의 독일령 남양군도를 점령하고, 이 지역에서의 이권을 할양받는 것을 영국 프랑스가 승인하는 조건으로 지중해에 소규모 함대만을 파견하는 등 독일과의 직접적인 전투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산둥 반도를 점령하고 나서, 일본은 중국에 대해 만주와 산동반도 등에 대한 일본의 이권을 반영구화하고, 남만주 내몽골 일부를 일본에 조차하는 것을 요지로 하는 등 21가지 특혜조건을 요구(1915년 1월)하였고, 중국은 이를 수용(5월)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5·4 운동(1919년)과 같은 격렬한 배일 여론에 밀려 실패하였다. 한편, 러시아 혁명(1917년)에 뒤이어 일어난 러시아 내전(1917~22년)에서 일본은 러시아 백군을 도와 7만 2천여명의 병력을 시베리아에 파견하였으나 패배하였다.
  9. 중국은 1917년에 연합국으로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산둥 반도를 차지한 것에 불만을 품었고, 사인도 하지 않고 국제 회의장에서 철수한다. 이것은 5․4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10. 국제 정치는 이제 유럽에만 힘을 기울일 수 없게 되었다. 전 세계가 국제 정치의 무대가 되었으며, 국제 정치가 좁은 유럽에서 벗어나 전 세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1. 전 세계 국민의 감시 속에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전 세계 지도자들이 가지게 되었다. 특히, 도덕적으로 국제 평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12.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늘어났고, 민주주의가 발달하였으며, 사회구성원간의 평등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아지게 되었다.
  13. 국제 정치에도 변화가 크게 나타나 독일, 러시아 등의 전제 국가들이 무너지거나 해체되었고, 유럽 국가들의 절반에 가까운 국가에서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사건 개요에 대하여

방화범 김대한(당시 56세)은 2001년 상반기경 뇌졸중(뇌경변) 으로 쓰러져 오른쪽 상·하반신의 장애가 오게 되어 같은 해 11월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증세가 호전될 가망이 없게 되자 삶을 비관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을 생각을 하고, 2003년 2월 18일 오전 8시 30분경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 소재 자신의 집 안방에서 1회용 가스라이터 2개를 상의 주머니에 넣고, 창고에 있던 자동차 세척용 샴푸통(용량 4리터의 흰색 플라스틱 통)을 꺼내 검은색 가방에 넣고 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가다가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송현역 부근에서 내린 다음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 7,500원어치 상당을 구입하여 샴푸 통에 담았다. 그리고 1호선 송현역으로 들어가 안심방향 승강장에서 9시 30분경 안심역 방면으로 운행되는 1079열차의 1호차에 탑승하였다.

9시 53분경, 1079열차가 반월당역을 출발해 중앙로역에 도착할 무렵 2호차와 가까운 1호차 노약자석 옆 일반석에 앉아 있던 김대한은 1회용 가스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려고 망설이던 중 맞은 편에 앉은 승객으로부터 "왜 자꾸 불을 켜려고 하느냐"는 나무라는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불을 붙이기로 결심하고, 1회용 가스라이터를 켠 다음 샴푸통에 들어 있는 휘발유에 불을 붙였다.

김 씨는 옷에 불이 붙자 황급하게 가방을 객실 바닥에 던졌고 불길은 순식간에 객실내로 번지면서 화재가 확산되었다. 불길이 번지자 승객들은 우왕좌왕하며 황급히 대피하는 등 혼란이 일어났다. 1079열차 기관사 최정환은 중앙로역에 도착해 출입문을 연 뒤 "불이야!"하는 소리를 듣고, 운전실 앞에 있는 CCTV 화면에 객차 쪽에서 승객들이 서둘러 빠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 운전실 옆에 있는 소화기를 들고 나와 불을 끄려 했지만 가연성 소재로 가득한 전동차 객실 내부의 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승객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9시 55분 30초 경 1079열차와 반대방향(당시 대곡 방면, 현재는 설화명곡 방면)으로 운행하는 1080열차가 대구역을 출발하여, 9시 56분 45초 경 현장상황을 알지 못한 채 상행선 승강장에 진입하여 정차함으로써 1079열차에서 발생한 불길이 1080열차로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확산되었다.

화재 발생 20여초 만에 대구지하철공사 종합사령실에 설치되어 있던 승강장 감시용 CCTV의 화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 연기와 유독가스 분출량이 많았던 것으로 판단되며, 화재가 진행되면서 지하 3층 승강장과 1079, 1080의 두 열차 내부는 유독가스와 화재로 인한 열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거나 우왕좌왕하는 등 아수라장이 되었다.

1079열차의 승객 대부분은 정차중으로 문이 열려 있었고 기관사가 승객들에게 대피를 지시하여 대피한 반면, 반대방향으로 운행 중이던 1080열차는 화재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역에 진입, 정차함에 따라 화재가 확산되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되었다. 1080열차의 경우 중앙로역에 진입할 때 이미 승강장의 연기로 인해 전동차 외부의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았었으며, 특히, 발화지점인 1079열차 1호차와 인접한 1080열차 5~6호차의 승객들은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정차 후 전동차 외부상황에 대해 알 수 없을 만큼 이미 화재로 인한 연기가 지하 3층 승강장에 꽉 차 있는 상태였다. 다만 불행 중 다행으로 1080열차에 타고 있던 대구선 금호역의 권춘섭 역장이 비상 개방 장치를 취급하여 문을 열고 주위 승객들을 대피시켜 피해를 다소나마 줄일 수 있었다.[1] 훗날 권씨는 이 활동을 인정받아 2013년 6월 7일 개설된 철도안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2]

사고 당시 화재가 처음 화재 발생한 안심행 1079열차에는 방화범을 포함한 250여명이, 반대방향(대곡)행 1080열차에는 180여명의 승객이 탑승했었던 상태였다.

지하철에서 불이 나자 중앙로역 일대는 유독가스로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으며, 환풍구와 출입구 등에서 나온 시커먼 연기는 시내 전체를 뒤덮어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정도였으며, 사고소식을 접한 뒤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로 아수라장을 이뤘다.

또한, 지하철에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 승객 가족들은 현장에 나와 발을 동동 굴렸고, 일부 가족들은 경북대학교병원과 동산병원 등을 뛰어다니다 눈물을 흘리며 현장으로 되돌아오기도 하였으며, 사고수습대책본부와 언론사에는 사고경위와 사상자 명단을 알 수 없겠냐는 문의전화가 쇄도하였다.

사고가 나자 경찰관과 소방관이 긴급 출동하여 현장지휘소를 설치함과 동시에 중앙로 일대 차량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소방인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화재진화와 구조작업을 펼쳤으나, 화염과 유독가스로 현장접근이 힘들어 구조가 지연되자 이를 지켜보던 많은 시민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1080열차장

대곡행(당시, 지금은 설화명곡행) 1080열차 기관사 최상열은 09:55:30경 대구역을 출발할 무렵 운전사령 으로부터 "중앙로역 진입 시 조심해 운전하여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라는 내용을 열차무선 전체호출(ALL Call)을 통하여 통보 받았으나 평상시처럼 S-ATO모드(반자동 열차운전: 열차의 운행, 정위치 정차, 출입문 개방은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출입문 폐쇄, 출발은 기관사의 수동취급으로 이루어지는 운전방식)로 대구역을 출발하여 중앙로역에 진입하였다.

중앙로역에 진입하기 전 상당거리 전방에서 역구내에 매연이 가득한 것을 발견하였으나 큰 화재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중앙로역 승강장으로 진입하면서 운전사령에 보고하기 위해 열차무선 통화를 시도하였으나, 통화가 되지 않고 09:56:45경 1080열차는 자동으로 중앙로역 상선 승강장에 정차한 후 출입문이 개방되었다.

승강장 상태를 확인하려고 운전실측 창문을 열어보니 유독가스가 극심하여 "출입문을 닫습니다. 곧 출발합니다." 라고 안내방송을 하고, 곧바로 객실출입문을 닫고 중앙로역을 출발하기 위해 FMC모드(수동운전: 열차운전, 정지, 출입문 등 모든 제어를 기관사의 수동취급으로 이루어지는 운전방식)로 전환하여 출발하려 하였으나 09:57:07경 전차선 단전이 발생되어 출발하지 못하였다.

곧바로 운전사령과 무선통화로 전차선 급전 및 조치를 취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아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09:58분 경 다시 운전사령과 무선통화로 승객대피에 대해 대화를 하던 중 급전이 이루어져 출발하려 하였으나 바로 단전이 되어 출발하지 못하였다.

09:59분 경 다시 운전사령과 무선통화에서 급전과 단전이 반복되어 전동차를 재 기동하겠다고 통화한 후 팬터그래프(전차선으로부터 전력을 받아들이는 장치)하강 및 MC Key(Master Control Key: 자동차열쇠와 같이 받아들이는 장치)를 off한 후 잠시 대기하였다가 전동차를 기동하여 출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몇 차례 전동차 출발에 실패하자 승객들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 는 안내방송을 2~3회 실시하고 10:03분 경 자신의 휴대폰으로 운전사령실과 통화하면서 "연기가 많이 찼으면 문 열어 놓고 안내방송을 하여 승객들을 승강장 위로 대피시키라" 는 지시를 받았다.

운전실 우측측면 출입문 열림 스위치(DOOS3)로 출입문을 개방하고 2회 정도 승객대피 안내방송을 하고 운전용품함에 비치된 손전등을 꺼내어 객실로 이동 중 입구에서 3~4명이 대피시켜 줄 것을 요청하여 계단입구까지 유도하고 다시 운전실로 돌아왔다.

10:10분 경 다시 운전사령실과 통화하던 중 "전동차 판 내리고 대피하라" 는 지시를 받고 MC Key를 취거하여 일부승객과 함께 지상으로 대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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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피르 고르마 아우터헤브리디스 스코틀랜드 본토 사이의 해협에 출몰한다는 요괴이다. 배를 침몰시켜 선원들을 익사시키는 물귀신의 일종이다. 이들은 민치 해협과 그 주위 일대에만 전승되는 특이한 요괴들로, 스코틀랜드의 다른 지방에서는 전승되지 않으며, 민치 해협 일대를 제외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비슷한 요괴를 찾을 수 없다.

이들은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고 덩치도 비슷한데 피부색이 파란 색이라는 점만 다르다. 폭풍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날씨가 좋을 때는 수면 위에 뜨거나 바로 아래에서 잠을 취한다. 블루맨은 수면 밖으로 몸통만 내놓고 쇠돌고래처럼 자맥질을 해서 움직인다. 또한 언어 구사 능력이 있다. 한 무리의 블루맨들이 해협을 통과하던 배를 발견하면 그쪽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고, 두목 블루맨이 배의 선장에게 시 두어 절을 소리친다. 선장은 블루맨들의 도전에 응답해서 시를 마무리 지어 소리쳐 대답해야 하며, 하지 못한다면 블루맨들이 달려들어 배를 전복시키려 한다.

블루맨에 대한 해석으로는 바다의 의인화라는 가설과, 몸에 파란 물감을 칠했던 픽트족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 또는 바이킹이 스코틀랜드에 데리고 온 북아프리카 출신의 노예들(투아레그족은 파란 옷을 입고 다녔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소위 "타락천사" 들은 세 부류로 나뉘게 되었는데, 한 부류는 땅에 사는 요정이 되었고, 두 번째 부류는 바다에 사는 블루맨이 되었고, 마지막 부류는 하늘에 살면서 북극광(오로라)을 일으킨다고 한다. 블루맨들은 인간과 생김새와 몸집이 모두 같으나, 피부색이 푸르다는 것만 다르다. 블루맨의 얼굴은 회색조를 띠고 하관이 길었으며, 어떤 블루맨들은 팔이 길었는데 팔 역시 회색조를 띠었다. 그리고 그들은 푸른색 쓰개를 선호했다. 최소 1개 이상의 문헌에서 그들이 날개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시안트 제도에서 스카이 섬 북쪽까지 이르는 약 19 킬로미터 길이의 수역은 폭풍우가 심하며 사시사철 조수 변화도 매우 빠르다. "파괴의 해류"(Current of Destruction)라 불리는 물살이 숱한 배들을 잡아먹은 이 험한 바다의 해식동굴에 블루맨이 산다.

민치 해협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스코틀랜드 본토 서부의 코리브리컨 만에도 다른 종류의 스톰 켈피가 있다는 얘기가 있다. 시인이자 민속학자인 앨러스데어 앨핀 맥그레고르는 코리브리컨의 스톰 켈피가 "하이랜드의 폭풍 물귀신(스톰 켈피) 중 가장 사나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블루맨은 분명히 매우 좁은 지역에서만 국한되어 전승되고 있다. 도널드 알렉산더 맥켄지에 따르면, 블루맨과 유사한 요괴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며, 심지어 스코틀랜드 안에서도 민치 해협 일대를 벗어나면 관련된 전승이 존재하지 않는다. 요괴나 정령에 관한 전설이 이렇게 좁은 지역에만 국한되어 전승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민속학자이자 티리 섬의 기독교 교역자였던 존 그레고르슨 캠벨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본토 서해안에 해당하는 아가일 지방에는 블루맨 전승이 없다. 그런데 1700년대 중반에 스코틀랜드 본토에서 북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셰틀랜드 제도 쿼프 마을을 방문했던 존 브랜드가 주민들에게 블루맨과 유사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섬 주위의 바닷물 속에 수염이 난 늙은 남자의 형상을 한 존재가 있어서, 배를 따라다니며 물 바깥으로 튀어나와 배의 승객과 선원들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블루맨 전승에 따르면 블루맨들은 격렬한 폭풍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으나, 날씨가 좋을 때는 잠을 자거나 해수면 바로 아래에 둥둥 떠다닌다. 그들은 허리 위 몸통만 해수면 바깥에 내놓고 쇠돌고래가 하는 것처럼 몸을 비틀고 자맥질을 하면서 움직인다. 날씨가 맑고 밤하늘이 밝은 날이면 신티 놀이를 하면서 논다. 블루맨들은 언어 구사능력이 있으며, 뱃사람들과 대화할 수도 있다. 특히 선박을 물보라로 뒤덮어 버릴 때 신나서 떠들어 대는데, 배가 전복되는 순간 천둥처럼 웃어댄다.

블루맨들이 떼로 모여서 지나가는 배를 공격할 때면 그들의 두목(그 이름이 소나그Seonaidh라고 하기도 한다)이 물 밖으로 몸을 내밀고 배의 선장에게 두 문장 짜리 시를 외친다. 도널드 맥켄지가 인용한 블루맨과 인간 선장 사이의 시 대결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때는 가미라스라고 불리는 외계인들이 지구를 공격하기 시작한지 5년이 지난 2199년, 지구를 지키는 지구 방위군 (Earth Defense Force, EDF)는 불리한 전세를 뒤집기 위해 화성 가까이로 공세이전에 착수한다. 그러나 인간의 무기로는 전혀 외계인 가리마스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EDF의 함대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때 '유키카제'라는 이름의 구축함을 지휘하던 함장 코다이 마모루가 스스로 방패로 나서서 가미라스의 공격을 막아주었고, 그 사이에 EDF 오키다 선장의 함대들은 무사히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 가미라스의 공격을 받은 마모루의 구축함은 결국 파괴되고 만다.

한편, 마모루의 동생 코다이 스스무는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에서 안전한 지하에서 거주하며 매일 지상으로 나와 지구 표면에서 레어 메탈을 찾고 있었다. 보통과 다름없던 어느 날, 스스무는 예전과 같이 지구 표면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한 물체가 근처에서 지구에 충돌하고, 그 여파로 스스무는 잠시 의식을 잃고 방사능에서 그를 보호해주던 헬멧은 날아가 버린다. 잠시 뒤, 그는 깨어나서 정신을 차렸는데, 그 곳에서 외계인의 메시지가 담긴 캡슐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주변에 방사능이 현저히 줄어든 것을 알아차린다. 스스무는 구조되어 오키다의 함선 안으로 옮겨지고, 함선에 타고 있던 선원들은 스스무가 발견했던 캡슐에 어떤 설계도가 들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설계도에는 이스칸델이라고 하는 행성의 좌표와 지구에서 그 행성까지의 항로가 담겨져 있었다. 한편 스스무는 자신의 형이 오키다를 구하는 대신 목숨을 잃은 것을 알고 오키다에게 직접 가서 심하게 화를 내지만, 선원 유키 모리가 힘으로 그를 제지한다.

한편 캡슐을 개봉한 오키다 선장은 이스칸델에 인간이 다시 살아날 희망이 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스칸델로 떠날 선원들을 모집하게 되는데, 전 EDF 파일럿이었던 코다이도 재입대하기로 결정했다. 선원이 모두 모집되고, 드디어 이스칸델로 갈 인간의 마지막 우주전함 '야마토'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야마토는 떠나기 전에 지구 주변의 가미라스 부대들을 섬멸해야만 지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선장 오키다는 아직 시험 발사조차 해보지 못한 파동포를 가미라스에게 발사해 섬멸하도록 명령을 내리는데, 야마토의 실험적이자 주된 무기인 파동포는 성공적으로 가미라스를 섬멸한다. 코다이는 다시 전 동료들과 한 팀이 된다. 한편, 코다이를 존경해 EDF에 입대했던 유키는 코다이를 미워하게 된다.

야마토 선원들은 첫 워프 테스트를 실시하고 난 후에 또 다시 더 많은 가미라스 함대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파동포로 공격하려고 해도 워프 또한 파동포처럼 원자로를 이용해서 작동시키기 때문에 엔진이 재충전되어 다시 워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야마토는 가미라스의 주력함을 파괴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파편이 유키의 전투기를 향해 날아가 유키의 전투기 안에 점점 산소가 부족해지게 된다. 코다이는 유키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거스르고는 그녀를 구하러 야마토 밖으로 전투기를 타고 나가 그녀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지구와의 마지막 교신을 하고 태양계를 벗어난다.

이후 또다시 워프를 하고, 야마토 선원들은 표류하는 가리마스 전투기를 발견하고는 포획해서 조사에 들어가지만, 외계인 파일럿은 살아있었고 특공대 대장 사이토 하지메 몸 속에 들어간다. 그 외계인은 스스로를 데슬러라고 부른다고 하고 가미라스는 의식 연합체라고 설명한다. 코다이는 조종당하는 사이토를 잠시 기절시키고, 그 외계인은 파괴된다.

드디어 야마토는 이스칸델 근처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이스칸델 방향에서 수많은 미사일이 발사되고, 야마토는 미사일을 모두 막아내지만 미사일 중의 일부가 날라와 파동포의 포구가 막히게 된다. 야마토의 가장 중요한 무기가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코다이는 아무 곳으로나 워프를 하자는 위험한 선택을 하고, 워프로 이스칸델의 정반대 면으로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야마토의 선원들은 그 정반대 면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구와 같은 모습인 걸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사실 가미라스와 이스칸델은 같은 행성이었던 것이다. 선원들은 자신들이 함정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코다이는 그냥 행성에 상륙하자고 동료들을 설득한다. 그는 행성 표면으로 다가가며 무장한 경계 시스템을 뚫고, 많은 동료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결국 코다이와 사나다, 사이토, 그리고 모리 4명만이 주어진 좌표에 도달하게 된다.이후, 병에 걸린 오키다 선장은 코다이에게 대신 선장 대리을 맡게 한다. 한편 선원들은 포획했던 가미라스 전투기가 위치 추적 장치를 달고 있어 야마토의 위치를 가미라스에게 누설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야마토는 공격해오는 가미라스 함대를 파동포로 격침시키지만, 가미라스 우주선이 코다이의 동료가 있는 제3함교 쪽으로 접근해서 자폭하려 한다. 코다이는 마지못해 야마토 밖에서 전투기를 타고 있던 유키에게 제3함교에 미사일을 발사하라는 명령을 내려서 제3함교를 떨어뜨리게 하고, 이로써 동료를 잃었지만 결과적으로 야마토는 위기를 넘기게 된다. 나중에 코다이는 유키에게 동료들에게 미사일을 발사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에 대해 사과하고, 그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좌표에 도달하고서, 한 외계인이 유키의 몸 안에 들어가고는 가미라스와 이스칸델은 같은 의식체의 두 양면이라고 셜명한다. 그 외계인은 그들의 행성은 머지 않아 멸망하려 하며 가미라스는 지구인들을 모두 말살한 뒤에 지구를 살기 좋은 환경으로 개량하고 있는 것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이스칸델은 자신들의 행성과 운명을 같이 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스칸델을 가둔 것이라고 말한다. 이스칸델은 유키에 지구에 방사능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입시키고, 그들은 다시 지구를 향해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행성을 탈출하는 동안 사이토와 사나다는 가미라스의 힘의 근원을 없애기 위해 고전분투하다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드디어 야마토는 지구로 돌아가게 되고 돌아가는 동안 오키다 선장은 죽음을 맞이한다. 선원들은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것을 대단히 기뻐하지만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가미라스 함대가 매복했다가 습격하고 야마토의 거의 모든 부분이 파괴될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데슬러가 나타나서는 지구를 공격할 생각은 더 이상 없지만, 대부분의 가미라스가 죽음을 마지했고, 데슬러 자신들은 복수를 위해 지구를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말한다. 코다이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야마토 밖으로 내보내고는 가미라스에게 포구가 막힌 파동포를 발사해서, 자신과 야마토, 그리고 가미라스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크레딧이 나오면서 유키와 코다이의 아들로 보이는 아이가 다시 초록색으로 뒤덮인 지구 위에 서 있는 장면으로 끝난다.

사과의 기원

사과나무의 원산지는 발칸반도로 알려져 있으며 B.C. 20세기 경의 스위스 토굴 주거지에서 탄화된 사과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서양사과는 4,000년 이상의 재배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시대에는 재배종, 야생종을 구분한 기록이 있고 접목 번식법이 이미 소개 되어 있을 정도로 재배 기술이 진보되었다. 로마시대에는 Malus 또는 Malum이란 명칭으로 재배가 성향하였고 그 후 16-17세기에 걸쳐 유럽각지에 전파되었다. 17세기에는 미국에 전파되었고 19세기 초까지는 영국이 세계 최대 생산국이었으나 19세기 말에 들어서는 미국에서 육종이 성행하여 최대의 생산국이 되었으며 20세기에는 칠레 등 남미 각국에 전파되었으며 현재는 러시아가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사과의 특징

나무는 높이 5~12미터에 이르는 작은 낙엽수이며, 넓고 밀집된 잔가지가 많은 수관을 가진다. 잎은 번갈아가며 배열된 모양의 단순한 타원형으로 끝은 날카롭고 톱니모양의 모서리, 가냘프고 솜털이 나 있는 하단 부분, 5~12센티미터 길이와 3~6센티미터 너비, 2~5센티미터의 잎꼭지의 특징을 가진다. 꽃은 잎과 함께 봄에 나는데 꽃 색깔은 흰색이며 처음에는 엷은 핑크색을 띠기도 한다. 직경은 2.5~3.5센티미터이며 꽃잎은 다섯 개이다. 열매는 가을에 익는데 보통 지름이 5~9센티미터이다. 드물지만 15센티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씨앗에는 미량의 사이안화물이 함유되어 있다. 과자(사과파이), 샐러드, 주스 등의 재료로 쓰이고 날로 먹는다. 농약이 묻어있으면 날로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사과의 품종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품종은 700여 종이 되지만, 대한민국에서 유실수로 재배되고 있는 품종은 10여 종이다. 사과의 품종은 수확기에 따라 조생종·중생종·만생종으로 나뉘고, 색깔에 따라 홍색사과·황색사과·녹색사과로 구분한다. 현재 널리 재배되고 있는 품종에는 스타킹·골든딜리셔스· 등이 있고, 근래에는 조나골드·후지 등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홍옥이 오랫동안 재배되었으나 현재는 적은수가 재배되고 있다.


사과의 상징

중국의 크리스마스에는 서로 사과를 나누는 것이 풍습이다. 이로서 중국에서는 사과를 긍정적으로 믿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과는 많은 종교적 전통에서 언급되는데 신비적이고 금지된 과일(금단의 열매)로 특히 여겨진다. 창세기에는 금지된 과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나와있지 않았는데도 보통 유럽의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브 아담을 유혹하여 함께 나누어 먹은 과일이 사과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사과는 유혹, 죄에 빠짐, 죄 그 자체의 상징이 되었다. 라틴어에서 사과와 악을 뜻하는 단어는 비슷하다.(사과는 "malus", 악은 "malum"). 이것이 사과를 성경적으로 금지된 과일로 해석하게 된 이유인 듯하다. 사람의 목에 있는 후두는 영어로 "Adam's apple"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아담의 목에 걸려 있는 금지된 과일로 인한 것이라는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중세의 성직자들은 사과의 유혹적인 빛깔, 양면성을 지는 맛(달콤하고 신), 여성을 암시하는 중심의 생김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과를 가로로 잘랐을 때 중심의 별의 모양이 바로 금단의 선악과나무에서 자랐을 열매임을 나타내는 표식이라고 해석하였다.

지금의 이탈리아 오스트리아가 접하는 국경을 기준으로 그 북쪽의 유럽에서는 포도가 잘 자라지 못하는 기후로 인하여, 사과를 숭배하였다. 그래서 그곳의 성직자들, 드루이드교의 사제들은 의식을 거행할 때 포도주 대신에 사과주를 이용했으리라 생각된다. 이들은 심지어 천국을 아발론(Avalon) 즉 사과의 섬이라고 부르면서 그곳엔 사과 착즙기 같은 것도 있을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켈트족은 자신들의 신앙인 드루이드교와 기독교를 합하여 기독교의 한 분파인 켈트 기독교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4세기 경에 이르면서 로마 가톨릭과 심각하게 대립하는 관계가 되었다. 470년경, 로마 가톨릭은 켈트 기독교의 그 성스러운 과일을 선악과의 전형으로 삼기 시작한다.

현대 한국에서 즐겨먹는 고추장 떡볶이는 한국전쟁 직후에 개발된 음식이다. 이전에 궁중에서 먹던 떡볶이는 간장 양념에 재어둔 쇠고기를 떡과 같이 볶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시의전서에서는 다른 찜과 같은 방법으로 조리한다. 흰떡을 탕무처럼 썰어 잠깐 볶는다. 다른 찜과 같은 재료가 모두 들어가지만 가루즙은 넣지 않는다라는 조리법이 설명되어 있으며, 주식시의에서는 떡을 잘라 기름을 많이 두르고 쇠고기를 가늘게 썬 것과 함께 넣어 볶는다고 나와 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도 궁중 떡볶이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의 고추장 떡볶이는 1953년에 마복림(1921~2011)이 광희문 밖 개천을 복개한 서울 신당동 공터에서 길거리식당 음식으로 팔던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중국음식점에서 가래떡을 실수로 짜장면 그릇에 떨어뜨렸는데 그 떡을 먹고보니 맛이 좋아서 고추장떡볶이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연탄불 위에 고추장,춘장을 섞은 양념으로 만들었다. 이후 1970년대 MBC 라디오의 "임국희의 여성살롱"이란 프로그램에서 신당동 떡볶이골목이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떡볶이는 고추장을 사용해 매운 맛을 내는 고추장 떡볶이와 간장을 사용하는 궁중 떡볶이로 그 종류를 나눌 수 있다. 원래 궁중에서 발달한 떡볶이는 간장 양념에 재어둔 쇠고기 과 같이 볶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매운 맛이 아니었으며, ‘궁중 떡볶이’로 불린다.

보통 떡볶이하면 연상되는 고추장 떡볶이는 대개 고추장 설탕을 써서 매운 맛과 단 맛을 내는데, 보통 매운 맛을 내는 고추장 등의 양념과 단 맛을 내는 설탕이나 물엿 등을 섞은 양념장에 을 섞은 뒤 졸여서 볶아낸다. 지역에 따라 여기에 케첩이나 후추, 겨자 등의 재료를 첨가하여 독특한 맛을 내기도 한다.


떡은 가래떡을 사용하며 가래떡의 주재료가 쌀가루로 만들었냐 밀가루로 만들었냐에 따라 '밀떡볶이'와 '쌀떡볶이'로 나뉘기도 한다. 떡볶이가 처음 나오던 시절에는 한국전쟁 이후에 흔해진 밀가루로 만든 가래떡을 사용하였다. 이후 쌀가루로 만든 쌀떡볶이가 나온 이후에도 사용되는 곳이 많다. 밀떡볶이는 떡볶이 국물의 점도가 매우 높아지고, 쌀떡볶이는 오래 끓여도 탄력성이 유지되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밀떡과 쌀떡을 섞어 판매하는 곳도 많다. 밀가루 전분을 섞어 만든 떡으로 만든 떡볶이도 있으며 더 쫄깃하고 잘 퍼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색깔은 노란색인데 익히면 흰색에 가까워진다.

추가하는 양념의 종류에 따라서 치즈 떡볶이, 곱창 떡볶이, 자장 떡볶이 등의 다양한 떡볶이가 있으며 추가할 수 있는 양념은 무궁무진하다. 가장 흔한 고추장 떡볶이 역시 배합과 양념에 따라 맛의 차이가 많이 달라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분식점과 노점상에서 많이 판매하며 보통 떡볶이와 함께 다른 음식을 곁들여 먹는 경우가 흔하다. 일반적으로 튀김류에 떡볶이 국물을 묻혀 먹기도 하며, 김밥 또는 순대와 곁들이기도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요즘에는 한식 세계화 과정에서 고급화, 다양화되고 조리법의 노하우 등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화도 이루어지고 있다. NFL 휴스턴 텍선스의 홈구장에서 미식축구구장 최초로 한국식 고추장 떡볶이를 판매하는 등 세계 각국에서도 떡볶이를 직접 판매하는 매장이 늘고 있다.

기름떡볶이: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옆의 통인시장에서 팔고 있는 기름떡볶이 기름과 떡을 중심으로 국물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고추기름과 다진 마늘을 볶아놓은 후 고춧가루 굴소스(또는 간장), 맛술을 배합한 양념과 미리 살짝 대쳐 놓은 떡볶이 떡을 넣어 볶는다.

처음 등장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70년대 초 통인동 부근의 옥인동 시장에서 통인시장보다 먼저 기름떡볶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간장과 고추장을 적게 넣으면서 오랜 시간 동안 철판에서 볶아 먹는 방식이었다. 현재 통인시장에서 팔고 있는 기름떡볶이는 이전 방식에 비해 양념을 많이 넣는 편이다.

2014년 2월 한국을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통인시장에서 기름떡볶이를 시식하였다.

짜장떡볶이:한국 떡볶이와 짜장소스의 결합으로, 떡볶이의 변형 짜장떡볶이는 떡볶이 특유의 고추장 소스를 대신하여 짜장소스로 만든것으로, 짜장 특유의 맛이 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어묵은 넣지 않고, 당근양파양배추쇠고기 또는 돼지고기 등을 넣고 만든다. 짜장떡볶이의 칼로리는 1인분에 250칼로리이다.

치즈떡볶이:떡볶이의 변형인 치즈떡볶이는 완성된 떡볶이 위에 치즈를 얹히거나 떡 속에 치즈가 들어 있는 음식을 말한다. 이는 씹을 때 떡과 치즈가 어우러져 강한 쫀득함을 느낄 수 있다. 분식집에서 판매되며,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도 있는 까다롭지 않은 쉬운 음식이다. 그리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 위에 녹차가루, 허브가루, ,파슬리 등을 뿌려 먹기도 한다. 치즈떡볶이의 칼로리는 1인분에 486칼로리이다.

떡꼬치:떡꼬치는 떡볶이떡을 4~5개(더 많을 수도 있다.) 정도 꼬치에 끼워서 기름에 튀긴 후 양념 소스를 발라먹는 음식이다. 떡 외에 채소나 해산물고기 등을 같이 끼워넣는 변형도 있다. 떡꼬치가 등장한 시기는 80년대 중후반 즈음으로 보고 있었으며, 현재에는 노점상을 중심으로 간혹 팔리고 있다. 떡꼬치의 전신으로는 15세기 요리책에 나오는 "떡산적"이란 요리로 추측되고 있다.

줄거리
  • 1. 커레히(Currahee) : 이지중대는 조지아주에 있는 캠프 토코아에서 커레히 산을 오르는 등 낙하산 부대원 훈련을 받는다. 주요 인물로는 딕 윈터스 중위와 루이스 닉슨 중위가 있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이기적이고 엄격한 이지중대장인 소벨 대위와 중대원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훈련시 소벨 대위의 부적절한 리더십으로 인해 중대원들은 전투에서 그를 따르기를 꺼려한다. 문제점이 있는 소벨 대위의 지휘와 적대관계에 있는 윈터스 중위와의 관계도 그려진다. 에피소드 종반에 이지중대는 영국으로 이송되고 D-Day 공격의 하나인 낙하준비를 한다.
  • 2. 디 데이(Day of Days): 노르망디에 강하한 이지중대 대원들은 대공포탄과 강풍으로 인해 강하지점에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중대장은 행방불명된다. 윈터스 중위는 남은 열두명의 중대원들을 이끌고 독일군 포대를 공격해 20명을 사살하고 포대를 무력화시키는 전공을 세운다.
  • 3. 카랑탕(Carentan): 강하 후 이틀, 여전히 많은 병사들이 부대를 찾지 못하고 노르망디를 헤매고 있다. 이지 중대 1소대원 블라이드 일병도 이틀을 혼자 지낸 후 중대에 합류하는데 때마침 이지 중대는 바닷가의 교통요충지 카랑탕을 점령하려 한다. 해변에 상륙한 연합군 탱크들이 내륙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이 작은 마을 카랑탕을 반드시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미군은 카랑탕을 점령하려 하고 독일군 역시 필사적인 방어전을 펼치려 한다. 마침내 카랑탕으로 진격한 이지 중대는 치열한 전투를 겪는다.
  • 4. 보충병(Replacements):작전을 계속할수록 늘어나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보충병들이 투입된다. 신병들은 여러 번 작전을 수행한 고참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지만 고참들의 보살핌 아래서 부대에 적응해 나간다. 그러나 신병들의 전사율은 높기만 하다. 한편 네덜란드를 통해 독일로 진격하려던 연합군은 노르망디보다 더 큰 규모의 공수작전을 계획한다. 이지중대 역시 안헴 근처 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작전에 참가한다. 그러나 어린 소년병과 늙은 병사밖에 없을 거라던 첩보와는 달리 주력 보병부대를 맞이해 퇴각한다. 퇴각 도중 신병을 포함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황소' 랜들맨이 적진에 홀로 남겨진다. 그러나 평소에 그를 따르던 분대원들이 랜들맨 구출을 나서고 랜들맨 역시 노련한 고참답게 부대로 귀환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된 마켓가든 작전은 실패했고, 결국 전쟁은 1944년 성탄절을 넘기고 만다. 이지중대가 속한 506연대의 인명손실은 사망 180명, 부상 560명이었고, 101공수사단 전체로는 사망 250명, 부상 2,100명이었다. 안헴에서 영국 1공수사단 사망자는 8천여 명에 이른다.
  • 5. 교차로(Crossroads):1944년 10월 5일 전투에서 이지중대는 둑과 길의 교차로 근처에서 사전에 확인이 안 된 독일군 SS 2개 중대와 마주친다. 독일군이 지리적으로나 수적으로 우세한 가운데 포위가 가능한 상황에서 윈터스 대위는 1개 소대를 이끌고 기습해 적을 격멸하고 포로를 사로잡는다. 이 공로로 윈터스는 2대대 부대대장으로 보직을 옮기나 항상 이지중대를 생각한다. 프랑스 후방에서 쉬던 이지중대에게 벨기에 바스통 지역을 사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월동장비는커녕 식량과 탄약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부대는 큰 난관에 빠진다. 다행히 기존에 주둔하던 부대에서 탄약은 받았지만 독일군에게 포위된 상태에 빠진다. 이지중대는 포병, 공중지원도 없이 바스통 숲에 매복했다. 군량도 탄약도 월동장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 6. 바스통(Bastogne): 바스통에 진을 친 101 사단은 동서남북에서 밀려오는 독일군에 완전히 포위를 당한다. 더군다나 물자도 부족한 상황에서 의무병 유진 로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닌다. 1944년 크리스마스까지 3개월간 버틴 끝에 바스통을 사수한 부대는 패튼 장군이 독일군의 포위를 뚫을 때까지 혹한과 물자 부족으로 시달리지만 결국에는 바스통을 지켜낸다.
  • 7. 한계점(The Breaking Point)부사관 립튼은 윈터스가 대대장을 맡고 떠난 후 이지중대 일등상사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윈터스 후임으로 온 다이크 중위는 승진을 위한 경력에 전투를 포함시키기 위해 온 장교일 뿐 매사에 소극적이고 안일한 대처로 중대원을 이끄는 데 실패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포이라는 마을을 공격하기 앞서 확보한 보아자크 숲 전투에서 유능한 장교인 벅 콤튼마저 전의를 상실한 채 후송 당하고, 노련한 고참들도 속속 적군 포격 속에 쓰러진다. 다이크 중위의 무능함을 아는 윈터스도 중대장을 교체하려고 하나 다이크는 상부에 연줄이 있어 쉽지도 않다. 그렇게 한달 간의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된다. 드디어 포이를 공격하는 결전의 날, 다이크는 전장에서 겁먹고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그가 당황하면서 병사들은 계속 쓰러지는데 윈터스 대위는 현장에서 다이크를 직위 해제하고 적에게 잔인하다고 소문난 스피어스 중위를 중대장으로 임명한다. 스피어스 중위는 뛰어난 지휘력과 용감하게 맡은 임무를 완수해 포이 탈환에 성공한다. 립튼 상사를 비롯한 대원들은 유능한 중대장을 맞아 반갑게 여기는데 스피어스 중위는 립튼 상사를 칭찬하고 윈터스 대위가 그를 소위로 임관시키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준다.
  • 8. 마지막 정찰(The Last Patrol): 이지중대의 창설대원이자 노르망디에서 싸웠던 웹스터는 가장 힘들었던 바스통 전투를 앞두고 부상으로 후방병원에서 몇 개월 있다 돌아오지만 전우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다. 아는 전우들도 4개월을 요양하고 돌아온 웹스터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본다. 이유는 그들은 병원에서 탈영하다시피 해서 복귀했었기 때문이다. 이런 웹스터와 함께 갓 육사인 웨스트 포인트를 졸업하고 임관한 존스 소위는 2소대에 배치받는다. 사령부에선 포로를 잡아다 독일군 상황을 심문하려고 소모적인 수색을 강요하는데 이번에는 웹스터를 포함해 15명 대원이 차출돼 수색하고 돌아온다. 무사히 포로를 잡아왔지만 잭슨을 잃었고 사령부에선 다시금 그 위험하고 소모적인 수색을 강요한다. 그러나 윈터스 대위는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고 대원들을 수색대에 내보내지 않는다.
  • 9. 우리가 싸우는 이유(Why We Fight): 이지부대는 드디어 독일에 입성하고, 아직도 패잔병들이 모여있는 부대를 해산하는 역할을 맡는다. 부대원들은 독일 전역에 남아있는 충격적인 인종학살용 수용소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들은 우리가 왜 싸우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 10. 전역점수(Points): 히틀러 사후 윈터스 소령이 이끄는 506연대 2대대는 히틀러의 알프스 별장이 있던 베르히테스가덴을 향해 진격한다. 그곳에서 나치 고위 관계자가 남긴 수많은 전리품을 챙기는 와중에 독일군은 무조건 항복한다. 하지만 많은 병사들이 전역하는 데 필요한 점수가 모자라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오스트리아로 이동한 부대는 그곳에서 대기명령을 받는다. 101공수사단은 곧 태평양 재배치가 확실하지만,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체류한다. 하지만 싸울 적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병사들은 교통사고, 총기사고 등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긴다. 점수가 되는 장교들은 남을지, 전역할지를 놓고 고심한다. 윈터스 소령 역시 군대에 남으라는 싱크 대령의 제의와 뉴저지에서 같이 일하자는 닉슨의 제의 사이에서 고민한다. 하지만 부대가 배치 받기도 전에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고 제2차대전은 막을 내린다. 전쟁이 완전히 끝났으므로 이지대원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




영화상의 오류

  • 세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앨버트 블라이스(Albert Blithe)는 노르망디에서 입은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채 1948년에 죽은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앨버트 블라이스는 자신의 군무를 마쳤으며, 한국전쟁에서의 공로로 은성 무공 훈장을 수여받았다. 또한 앨버트 블라이스는 상사 계급까지 진급하였으며, 결혼하여 두 명의 아이를 가졌다. 앨버트 블라이스는 바스통 전투 기념식에 참여한 후인 1967년 12월 천공성 궤양 수술 합병증으로 사망였으며 군대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알링턴 국립 묘지 에 묻혔다.[1]
  • 공수부대 : 미국 낙하부대원의 D-Day 회상과 제3제국의 몰락(Parachute Infantry: An American Paratrooper's Memoir of D-Day and the Fall of the Third Reich) 에 따르면, 리처드 윈터스는 데이빗 웹스터가 네덜란드에서 부상을 입은 후 병원에서 이지 중대로 돌아오기 전에 이미 소령으로 진급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정찰(The Last Patrol)" 에서 윈터스는 에피소드의 끝에 진급을 하게 된다.
  • 아홉 번째 에피소드 "우리가 싸우는 이유(Why We Fight)" 의 시작 부분에서 이지 중대원들이 파괴된 거리를 정리하는 독일 민간인들을 내려다보면서 나오는 날짜는 1945년 4월 11일이다. 에피소드의 끝에서 이 장면이 다시 나오는데, 이어서 닉슨 대위가 이지 중대원들에게 히틀러가 자살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히틀러는 15일가량 뒤인 1945년 4월 30일에 자살했다.
  • 역시 아홉 번째 에피소드에서 1945년 4월 11일이라고 나오는 날짜에 관한 오류이다. 아홉 번째 에피소드의 주 내용은 첫 정면에 나오는 1945년 4월 11일로부터 "한 달 전(One Month Earlier)"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면 아홉 번째 에피소드의 내용은 1945년 3월 11일부터 1945년 4월 11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 되는데, 극중 닉슨 대위가 "대통령이 죽었다" 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1945년 4월 12일에 죽었다.[2]
  • 마지막 에피소드인 "전역 점수(Points)" 에서, 조지프 리브갓 이 전쟁이 끝난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택시 운전수가 되었다고 나온다. 하지만 그의 아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지프 리브갓은 전쟁이 끝난 후 이발사를 한 것이 확실하다.[3]
  •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이지 중대는 오스트리아의 베르히테스가덴과 독수리 둥지 및 그 인근 지역을 별다른 저항 없이 점령한 첫 번째 부대처럼 나온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베르히테스가덴과 베르고프를 점령한 첫 번째 연합군인 미국 육군 제3 보병 사단이 이 지역에 당도했을 때 이미 독수리 둥지는 자유 프랑스군 제2기갑사단 소속 병력이 점령한 이후였으며, 이어서 506연대 제1 대대의 "C" 중대가 이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 잘못되었을 것이다. 506연대의 2대대는 베르히스가든을 향해 다른 경로로 진입하였으며 88mm 대공포로 무장한 2명의 독일군에 의해 사상자를 냈다.[4] 정확하게 어느 부대가 베르히테스가덴을 점령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의견이 분분했지만, 책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뒷 이야기(Beyond Band of Brothers) 에서 딕 윈터스 소령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존 W. 오'다니엘"의 미 육군 제3사단이 확실히 잘츠부르크 인근을 저항 없이 포위하였으며 아마 그들의 주력 부대가 우리(2대대, 506공수연대)가 베르히테스가덴에 도착하기 전에 그곳을 점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사실을 말해 줍시다. 만약 미국 육군 3사단이 첫 번째로 베르히테스가덴에 도착하였다면,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베르히스가든은 비교적 작은 마을입니다. 제가 베르히테스가덴의 맥주 바에 웰시 소령과 함께 갔을 때, 우리는 호텔 직원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헤르만 괴링의 장교 클럽과 와인 저장고는 확실히 필리프 르끌레르 장군 휘하의 자유 프랑스군 제2기갑사단의 초병 또는 미국 육군 3사단의 소총수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3사단이 첫 번째로 그 곳에 당도하였는데도 그들이 우리를 위해 그 아름다운 메르세데스-벤츠 770에 아무 손도 대지 않았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 마지막 에피소드 "전역 점수(Points)" 에서, 윈터스 소령은 항복한 독일 대령으로부터 화려하게 장식된 루거 권총을 받을 것을 제의받는다. 이 장면에서, 윈터스는 독일 대령에게 권총을 계속 가지고 있으라고 하지만, 보너스 피쳐 DVD에서 윈터스는 사실 그가 권총을 받았으며, 당시 받은 월터 PP에 관한 일을 회상한다. 같은 제목을 가진 앰브로즈의 소설에서, 앰브로즈는 윈터스가 독일 대령이 건넨 권총을 검사할 때, 권총이 발사될 수 없도록 개조되어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윈터스는 권총을 실제로 사용하지 못했다. 윈터스는 HBO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우리는 함께 서 있다에서 당시 독일군으로부터 받은 권총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또한 콜 C. 킹시드가 쓴 책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뒷 이야기: 딕 윈터스 소령의 회상에서 딕 윈터스 소령은 권총을 받기는 했지만 권총을 준 독일군은 소령이었지 대령은 아니었다고 진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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