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은 따로 나뉜 주권자와 독립한 나라로서 그들 자신의 군주와 정치적인 구조를 가지며 9세기부터 존재해 왔다. 일단 웨일스 공국 1284년 러들랜 법(Statute of Rhuddlan)에 따라 잉글랜드 왕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603년부터 왕국연합(Union of the Crowns)이라는 동군연합 상태였던 잉글랜드(웨일스를 포함한)는 1707년 연합법(Acts of Union 1707)에서 스코틀랜드와 합병하였다. 이로써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형태로 정치적 연합이 이루어졌다.

1800년 연합법(Act of Union 1800)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에 아일랜드 왕국을 병합시켰다. 당시 아일랜드는 리머릭 조약(Treaty of Limerick)에 따라 1541년부터 1691년까지 점차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아 가던 상태였다. 그에 따라 1801년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성립하였다.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은 2년 전에 아일랜드 섬의 분할에 따른 결과며, 얼스터 지방(province)의 9개 (county) 가운데 6개 주가, 1927년에 현재 이름으로 바뀐 영국령으로 남겨졌다.

영국은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정보 및 유력한 문학 연극의 전통을 가진 계몽시대의 중요한 국가였다. 그 다음 세기 내내 영국은 문학, 예술  과학에 획기적으로 공헌한 의회 민주주의와 같은 서양 사상의 발전에서 주역이 되었다. 초기 대영 제국의 부는 다른 강국처럼 역시 1750년 이후에 있었던 노예무역의 산업화를 포함한 식민 착취에 의해 그 일부는 생성되었다. 18세기 영국의 노예 매매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영국 함대가 아프리카 노예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내는 악명 높은 삼각무역의 일부였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영국은 노예무역법을 만들어, 영원히 노예 무역을 금지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영국은 미국 시카고,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필라델피아, 뉴욕, 볼티모어, 보스턴, 워싱턴 D.C., 애틀랜타 등을 차지했다가 18세기 말에 독립시켰다.

산업혁명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한 뒤에, 19세기 영국은 세계의 주요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대영 제국이 전성기일 때 영국의 영토는 지구의 약 4분의 1까지 커졌었고, 인구도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이었다. 이는 역사에서 가장 큰 인구와 영토였다. 당시 대영 제국은 그 영토가 지구 널리 퍼져있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일컬어졌다. 1910년대 후반에는 이라크까지 점령하였다.

19세기 내내 영국은 다당제의 출현과 투표권의 확장을 통해 부분적으로 의회 민주주의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학 예술의 발달은 18세기에 이루어진 아이작 뉴턴 등의 업적을 계승하거나 부분적으로 더 오래된 문학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영국은 탁월한 강대국으로 남았고, 1921년에는 제1차 세계 대전 뒤에 국제 연맹 위임 통치령이 되었던 독일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를 획득하여 최대로 넓어졌다.


전쟁에서 벗어난 뒤에 세계 최초로 거대한 국제 방송망인 BBC가 생겨났다. 영국의 노동 운동은 19세기 후반부터 확장해 왔고, 1924년 제1차 노동당 내각이 집권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를 포함한 영국 연방과 연합하여, 그리고 나중에는 연합국과 연합하여 나치 독일과 싸웠다. 전시 지도자 윈스턴 처칠과 그의 후임 클레먼트 애틀리(Clement Attlee)는 3대 강국의 한 축으로 전후 세계를 계획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에 재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경제적으로 비싼 전시 대부금, 미국과 캐나다에서 1945년에 빌려준 대부금이 전후에 미국의 마셜 플랜 원조와 합쳐져서 영국은 복구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1973년 이후로 유럽 경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고, 1992년에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서명하여 12개국으로 이루어진 유럽 연합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오늘날 보수당 내각의 태도는 EU에서의 몇몇권리와 자격반환으로, 노동당 EU와의 통합으로 그리고 자유민주당은 현재 정책의 지지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였으나 현재는 브릭시트 투표로 인하여 탈퇴하였다.1945년에 영국은 세계 최초면서 가장 광범위한 의료 제도를 포함한 복지 국가의 출현을 알렸고, 정부 정책의 변화는 영국 연방 도처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민족 국가로서의 영국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 전후 영국의 정치적 역할의 한계가 1956년 수에즈 사태에서 보여졌지만, 영어의 국제적 통용과 1960년대 영국 대중 문화의 해외 전파는 영문학이나 영국 문화가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의미했다. 1970년대의 국제 경제의 하향세와 산업 쟁의의 시대에 뒤이어 1980년대는 북해 유전의 수익과 경제발전이 있었다. 마거릿 대처 수상의 지도력은 전후 정치적, 경제적 합의의 전환을 이끌었다. 이러한 경향이 1997년 부터 토니 블레어수상의 지도 아래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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