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과 자전거 산업의 역사를 이끌고 지켜봐 온 기업. 방위산업체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두번째 자동차 회사로 1944년 12월 11일에 학산 김철호에 의해 '경성정공'이란 이름으로 설립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자전거 '3000리호'를 출시(다들 아시는 그 삼천리자전거의 기원이 된다)하고 1952년 2월 회사 이름을 기아산업(주)로 변경하였다.

1962년 기아마스타 시절에 일본 마쓰다와의 기술 제휴로 배기량 356cc의 3륜 화물차 K-360을 생산하였으며, 1973년에 김철호 회장의 타계로 장남인 김상문 씨가 후계자로 나서며 1974년 마쓰다 파밀리아의 차체를 바탕으로 최초의 국산 FR 승용차 브리사를 제작하였다. 브리사는 당시 현대자동차의 포니 및 새한자동차의 제미니와 격돌해 한때는 국산 승용차 시장 1위를 차지하는 최강자의 위치에 있었을 정도로 막강했던 차량.

1976년에는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킨다. 현재의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및 특수차량 공장. 현재도 일부 SUV, 버스, 봉고트럭, 군용차는 광주공장과 특수차량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1981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산업합리화)로 인해 정부로부터 '중소형화물차 및 버스 전문생산업체'로 지정받아 경영 위기를 맞았으나, 같은 해 10월 전문경영인 체제가 들어선 이후로 트럭을 개조해 내놓은 소형승합차 봉고를 출시하면서 오히려 기업 이름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편 이쯤부터 마쓰다 차량을 OEM 생산해 수출하기 시작했다. 주로 일본과 동남아 지역으로 수출되었다.

1986년 말부터 오대양 육대주를 휘날리는 깃발(또는 물결무늬)을 형상화한 로고로 변경하고 1987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풀리고 프라이드, 콩코드로 부활, 이후 1992년에 세피아를 출시하고 아산만공장(현 화성공장)을 지으면서 확실하게 그룹을 키워갔다.

1994년 지금과 같은 로고로 변경한다. 바뀐 이유는 그 전 로고의 굴뚝이 환경오염을 연상하게 해서 바꿨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대차 인수 뒤에는 내수용 한정으로 차량 외부에 원형의 다른 로고를 붙였지만, 인지도가 낮고 BMW의 로고와 비슷한지라 "어차피 현대나 기아나 타원 모양의 로고이니 통일감 있게 예전 그대로 하자" 해서 2004년 2세대 스포티지의 출시 때 지금의 타원형 로고로 다시 돌아왔다. 단, 수출용은 기존의 타원형 마크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1997년 경영의 악화로 부도를 맞고, 1998년 10월 입찰을 통해 현대자동차에 아시아자동차와 함께 인수되어 현대그룹에 편입되었다. 1999년에는 기아자동차판매, 아시아자동차, 기아대전판매, 아시아자동차판매 4개사를 합병하였다.

2000년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여러 계열사들이 현대그룹에서 분가하면서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2011년에는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여 정통성을 강화한 기념으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이름이 빠지게 되었다. 지못미.

유명 테니스 선수인 라파엘 나달의 스폰서이기도 하다.

 

기아차의 부도

기아그룹은 1997년 기아차를 중심으로 기아중공업(구 기아기공, 현 현대위아), 기아전자(본텍, 2005년에 현대오토넷으로 합병), 기아정기(카스코, 2007년에 현대모비스로 합병.), 기아특수강(현 세아베스틸), 기산 등의 28개 계열사에 직원 5만 5천명, 1996년 자동차 수출 30억달러의 재계 순위 8위의 거대 그룹이 되었다. 특히 특정 일가의 소유가 아닌 소유 분산이 잘 이루어져 있고 전문 경영인 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는 모범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소유구조 때문에 강력한 재벌들 사이에서 매우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1993년 자동차 산업 진출을 노리던 삼성그룹이 대량 주식 매입에 나서면서 삼성그룹과 기아그룹이 충돌하기도 했다. 여론의 비판을 받은 삼성이 지분 일부를 다시 매각하지만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설은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후 기아는 국제 경쟁의 격화와 경기침체, 계열사의 부실한 경영 실적 등으로 1997년 봄부터 위기설에 휩싸이다가 결국 1997년 7월 15일 부도유예협약 적용대상이 된다. 이후 28개 계열사를 14개로 줄이고, 기아차노조가 무분규, 임금동결 선언을 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으나 결국 10월 법정관리로 넘어가고 김선홍 회장 등 경영진은 완전 퇴진하게 된다. 외환위기의 혼란 속에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되지만 결국 1998년 10월 국제입찰을 통해서 현대자동차에 매각된다.

기아그룹 부도의 원인으론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첫번째는 잘못된 예측에 바탕한 무리한 사업 확장. 기아그룹은 1990년대 아시아자동차, 기아특수강, 기산(건설) 등에 전폭적인 투자를 했으나 아시아의 트럭과 기아특수강의 철강은 수요예측이 잘못돼서 만성적인 공급 과잉이었고, 주택건설에 뛰어든 기산은 부동산경기 침체로 엄청난 자금이 묶이고 말았다. 이 3개 계열사의 적자때문에 기아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것.생사 갈림길 선 기아그룹 패인 분석 특히 전문경영인에 불과한 김선홍 회장이 프라이드의 성공이후 자만심에 취해 무리한 몸집 부풀리기만 하는 등 여타 재벌을 흉내내는 오너놀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았다. 기아사태와 경제민주화

두번째는 삼성의 무리한 인수추진과 갑작스런 자금 경색에 따른 일시적 위기. 기아그룹이 계열사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외환위기 이전 한국재벌들은 대부분 만성적자 상태에서 은행빚 돌려막기로 수십년째 운영중이었다. 1997년 3월 삼미그룹 부도로 인한 금융시장의 경색에 유탄을 맞은 것뿐이라는 주장이다. 더구나 기아그룹은 주력사인 기아차는 흑자였기 때문에 방만한 몇 개 계열사만 정리하면 충분히 자력회생이 가능했다는 주장이 당시 기아 임직원들 사이에선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5개 재벌 그룹의 10개 계열사 재무관리팀에서 간부와 임원으로 25년간 일하였던 김건씨의 "엉터리 재무제표 읽는 비법" 12페이지에서 언급한 바에 의하면 1997년 당시 기아자동차가 설립 이후 34년 동안 단 1년만 흑자를 내었을 뿐이며 실제 적자는 3조 3천억원 가량이었지만 재무제표에 나타난 적자는 3800억원에 불과하였다고 나온다.

이 와중에 곁들여진게 일명 삼성음모론이다. 나중에 '삼성 X파일 사건'을 통해 기아차 매각 앞뒤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아차 쪽에 금융권이 추가 지원을 하지 않도록 삼성이 정치권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인 정황이 실제로 드러나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기도 했다. 삼성이 삼성생명과 제2금융권을 통해 기아의 자금 경색을 유도하고 정부를 압박해 기아 경영진 퇴진을 이끌어 냈다는 것. 이후에 기아차를 인수할려 했으나, 자동차 산업 철수를 결정하면서 인수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은 1997년 초에 '기아차 성장 한계 봉착' '자동차 업계 대대적인 구조조정 필요' 등의 보고서를 공개해서 기아를 흔들기도 했다. 삼성자동차 보고서 파문 부도유예협약 직후인 8월에는 '쌍용, 기아차 인수가 필요하다'는 삼성내부 보고서가 유출되기도 했다. 1999년 외환위기 청문회 당시 김선홍 회장은 "삼성이 이를 바탕으로 금융계열사 등을 통해 빌려줬던 5000억원대의 자금을 거둬들였고, 결국 기아가 파산에 봉착했다"면서 음모론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몇가지 추가 이야기가 있는데 1995년 당시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기아차 소하리 공장 출고장에 있던 봉고 J2의 사진을 찍다 기아자동차에 걸리는 바람에 기아와 삼성 간의 알력이 발생한 바 있고(1995년 6월 17일 한겨레 기사), 1997년 3월에는 중앙일보의 취재헬기가 기아자동차 아산만공장(현 화성공장) 상공을 선회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1997년 3월 13일 동아일보 기사). 참고로 봉고 J2 사진을 찍다 걸린 사건에 대해 삼성중공업에서는 사내 차원에서 중징계를 내리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부도가 나자 굉장히 특이한 상황이 발생되었는데,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인 노조와 경영자가 정치로 회사의 위기를 풀어나가려 시도한 것이다. 적은 규모의 부정 혹은 부도였다면 14%의 지분율을 가지고 있던 노조가 1% 지분율의 경영자를 쫓아냈겠지만, 너무 부도의 규모가 크자 양 측이 합심해서 정부를 상대로 정치적인 수단을 이용한 것이다.

 

기아차만의 특색

현대가 안정적인 쪽을 선호한다면 이쪽은 모험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쪽을 선택했다. '기술의 기아'라는 이름에 걸맞는 행보를 보였었는데, 예를 들자면 국내최초로 차체(Underbody, "섀시(chassis)"라고도 함)를 독자 개발한 세피아라든지, 영국 로터스에서 생산 라인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로드스터인 엘란, 세계 최초의 온로드 중심 소형 SUV인 스포티지, 그리고 대한민국 대형버스 최초로 자체 디자인을 적용하여 GD마크를 획득한 그랜버드 등이 있다. 게다가 그 이전으로 올라가면 박정희 정권 시절에 이미 부품면에서 90% 이상의 국산화를 이루어낸 브리사까지 포함하는 등 기아의 기술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엔진에 있어서도 연비위주의 현대자동차와는 달리 성능 위주의 세팅을 하였으며, 후에 자체 개발한 엔진인 T8D엔진 역시 성능위주의 세팅으로 나왔다. 이 엔진은 엘란의 생산분과 크레도스 등에 쓰였는데 성능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당시의 한국엔진 중 가장 스포티했다. 부도 전에는 사실상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했던 회사로 엔지니어 마인드가 국내 자동차 업체 중 최강이었다고 봐도 할 말이 없는 회사. 창업주부터가 애시당초 일본에서 기계공업에 종사해서 돈을 벌었던 인물이다. 엔진 특성으로 보면 대체적으로 마쓰다의 터보엔진을 당시 국내 실정에 맞게 자연 흡기로 개조하고 출시한 엔진이 많고, 전체적으로 회전수가 높게 잘 돌아가고 압축비도 높은 편. 비슷한 자연흡기용 엔진과는 다르게 전부동식 피스톤핀이나 피스톤 쿨링용 오일제트를 장착하는등 약간 오버스펙인 면이 있다. 터보용 엔진에 어울리는 부분이지만, 자연 흡기로 고치면서도 다운그레이드 하지 않은 부분 부분이 남아있는 편.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 이전에는 유럽의 차량들을 도입하여 생산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아시아자동차까지 포함하면 피아트 124, 피아트 132, 푸조 604 등이 있으며, 몇십년 후의 일이지만 기아자동차가 영입한 피터 슈라이어와 유럽 전용 모델 기아 씨드를 포함하여 이들은 기아자동차의 유럽 DNA로 분류되고 있다.

다만 자동차 디자인 부분에서는 현대자동차보다 뒤쳐져서 촌스럽다거나 거친 느낌을 주는 자동차가 많고, 자동차 내부의 스위치 질감이나 배치도 현대자동차보다 저렴한 느낌이 나는 것이 단점이었다. 1980년대 내내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를 비롯한 이유로 승용차 개발 역량을 키우지 못했던 부분도 이에 한 몫을 했었고, 1980년대 중순 이후로 부족해진 승용차 개발 및 디자인 노하우를 포드와의 협력 개발 프로젝트나 해외에 나와 있었던 직원들을 통해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이렇다보니 현대자동차 인수 후 '기술의 기아'라는 이미지가 퇴색되고 '디자인의 기아'로 이미지 변신 후에는 과거 기아자동차를 추억하는 오너들 사이에서 나의 기아차는 이렇지 않아라는 반응도 일부 있다.

어찌됐든간에 현대에 인수 된 이후 현대차의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받아서 차를 제작하지만 어차피 이정도는 해외 메이커에서도 흔한 일이라 기아의 나름대로 독자적인 세팅과 설계를 하기도한다. 같은 플랫폼이라도 서로 비교해보면 은근히 다른 부분이 많은 등 비교 시승해보면 재밌다.근데 깨알같은 차이라 일반인에게 큰 의미는 없다 그러나 역시 현대차 그룹 산하기 때문에 정말로 마음대로 차를 제작할 수 없다는건 큰 애로사항이다. 아우디나 폭스바겐의 예처럼 서로 차종이 겹치건 말건 상관 안하고 마음대로 차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것 과는 매우 대조적인데 아무래도 기준점이 현대에 있기 때문에 기아차는 상대적으로 파워 트레인 공급 등에서 많은 차별을 받는다. K9의 엔진과 위치 같은건 유명한 예시고 트림이나 옵션 구성도 묘하게 제한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어차피 상술된 스위치 질감 같은 실내 인테리어 문제는 2015년 현재에 와서는 일부 구형차종을 빼고 완전히 해소 된 문제다. 하지만 파워 트레인 공급이나 미묘한 트림 구분은 쉽게 해소되기 힘든 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현대차 그룹의 정책상 기아는 틈새시장 공략용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엑센트에는 1.6 디젤 엔진에 DCT 미션을 달고 나오지만 프라이드는 그런거 없고 1.4디젤에다 인기가 떨어지는 수동 미션만 나온다던지, 내수용 경차나 MPV, 미니밴같은 차량은 기아에서만 생산 한다던지. 어쨌든 위에 설명된 사항은 무조건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젊은 층이나 일부 매니아들은 기아차의 옵션구성을 더 반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맞춰 차를 구입하는데는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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